일월도 벌써 하순에 접어들었다.
연휴로 시작되는 달이 늘 그렇듯 어수선하게 설레는 사이에 시간이 그만 후딱 달아나 버린것 같다.
며칠전 새해 첫달에 늘 해온 버릇대로 잠깐 주변을 정리해 보았었다.
정리한다고 해도 지닌 것이라고는 묵은 원고뭉치와 옷가지들 정도여서 대수로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쌓인 분량이 적지 않아서 언제든 손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써놓고 쌓아 두었던 원고들은 제대로 삭이지 못한 치졸한 감정의 찌꺼기들 같아서 다시 보기 역겹고 중요할 듯 싶어서 아껴두었던 자료며 메모들도 다시보면 덧없고,값없어 보여서 무엇때문에 이런 것들을 욕심스럽게 모아두었던가 한심해하며 내버리기도 했다.
생각난 김에 버릴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리겠다고 다부지게 정리를 시작하지만 하나하나 다시 들춰보는 동안 결심은 풀어지고 이것은 어디에 쓸모가 있고 저것은 어떤 경우에 꼭 필요할거라고,제법 단호하게 버렸던 것들을 주섬주섬 다시 모아 놓기도 했다.
우유부단한 정리방식이기는 했어도 정리를 끝낸뒤 꽤 큰 쓰레기더미가생겨나서 제법 산뜻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단념할것들을 깨끗이 단념하고 무엇에도 더이상 집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 스스로도 개운하게 여겨졌었나보다.
그런데 새해의 주변정리 중에서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역시 수첩을 정리하는 일인것 같다.
아는 사람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새수첩에 옮겨 적으면서 다시 옮겨 적기를 단념해야 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여간 울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던 사람들이 헤어져서 만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수히 많겠지만 가장 평온하고 일상적이면서 사실은 가장 깊은 자유를 남기는 것이 바로 서로를 천천히 단념하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잃으면 고통스러운것 들을 많이 지니고 살기는 하지만 무엇을 잃는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잃는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다시 없을것 같다.
시간에 부대끼고 작은 아집과 일상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단속하지 못해서 우리는 갈수록 사람을 얻을 기회보다는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단념해야하는 기회와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 같다.
새해에는 더이상 사람을 단념하게 되지 않기를,그리고 나도 역시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조용히 단념당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휴로 시작되는 달이 늘 그렇듯 어수선하게 설레는 사이에 시간이 그만 후딱 달아나 버린것 같다.
며칠전 새해 첫달에 늘 해온 버릇대로 잠깐 주변을 정리해 보았었다.
정리한다고 해도 지닌 것이라고는 묵은 원고뭉치와 옷가지들 정도여서 대수로운 것도 없지만 그래도 쌓인 분량이 적지 않아서 언제든 손을 대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써놓고 쌓아 두었던 원고들은 제대로 삭이지 못한 치졸한 감정의 찌꺼기들 같아서 다시 보기 역겹고 중요할 듯 싶어서 아껴두었던 자료며 메모들도 다시보면 덧없고,값없어 보여서 무엇때문에 이런 것들을 욕심스럽게 모아두었던가 한심해하며 내버리기도 했다.
생각난 김에 버릴수 있는 것은 모두 버리겠다고 다부지게 정리를 시작하지만 하나하나 다시 들춰보는 동안 결심은 풀어지고 이것은 어디에 쓸모가 있고 저것은 어떤 경우에 꼭 필요할거라고,제법 단호하게 버렸던 것들을 주섬주섬 다시 모아 놓기도 했다.
우유부단한 정리방식이기는 했어도 정리를 끝낸뒤 꽤 큰 쓰레기더미가생겨나서 제법 산뜻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단념할것들을 깨끗이 단념하고 무엇에도 더이상 집착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 스스로도 개운하게 여겨졌었나보다.
그런데 새해의 주변정리 중에서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역시 수첩을 정리하는 일인것 같다.
아는 사람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새수첩에 옮겨 적으면서 다시 옮겨 적기를 단념해야 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여간 울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던 사람들이 헤어져서 만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수히 많겠지만 가장 평온하고 일상적이면서 사실은 가장 깊은 자유를 남기는 것이 바로 서로를 천천히 단념하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잃으면 고통스러운것 들을 많이 지니고 살기는 하지만 무엇을 잃는다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잃는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다시 없을것 같다.
시간에 부대끼고 작은 아집과 일상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단속하지 못해서 우리는 갈수록 사람을 얻을 기회보다는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단념해야하는 기회와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 같다.
새해에는 더이상 사람을 단념하게 되지 않기를,그리고 나도 역시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조용히 단념당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1993-01-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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