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의 신문에서 우리는 일본에 관한 대조적인 기사를 읽었다.그 하나는 무역왕국 일본이 11월까지의 11개월동안 경상수지 흑자 1천61억6천3백만달러,무역수지 흑자 1천1백95억2천2백만달러를 기록했다는 내용.무역수지 흑자는 91년에 이미 1천만달러를 넘어섰으나 경상수지 흑자의 경우 1천만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우리로서는 까마득한 채 부러운 숫자라 아니할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유」에 의한 자살이 늘어났다는 기사.11월까지의 자살자 통계에 의할 때 그 총수는 1만9천4백41명인데 그중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자살자가 1천8백18명으로 집계되었다는 것이다.이는 그 전해에 비해 23%나 더 증가한 숫자인 것으로 알려진다.국제적인 장사를 잘 해서 큰 돈을 벌고 있는 세계제일 흑자국에서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니.왕청된 양달과 응달이다.
그건 반드시 일본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세계정세를 마름질하는 초강대국 미국에도 떠돌이 거지는 적지 않다.이른바 「홈리스」(집없는 사람들).도비할것없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90년3월,전국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수가 22만8천여명.조사되지 않은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숫자는 그 보다 훨씬 웃돌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수수방관하는 건 아니다.그래도 이 「배부른 거지들」은 줄지 않는 모양이다.남의 나라 걱정 할게 아니라 집안 건사부터 하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그러고 보면 많고 가멸지다 하여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겠다.오히려 많고 가멸져서 걱정인 경우를 갑부의 죽음과 그 자녀들의 애바른 피투성이 싸움에서도 볼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그래서 더더욱 「불환과이환불균」이라는 공자의 말은 명언이다 싶어진다.노나라 실권자 계씨의 가신으로 있는 염유를 꾸짖는 가운데 나온 말로서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그렇긴 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사는 사회란 본디 고르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일본 얘기로부터 시작했으니 18세기 일본 유학자의 「고르지 못함」에 대한 은유법을 한번 들어보자.경세실용의 학문으로 이름 높았던 호소이(세정평주)는 이렇게 말한다.『백성들이 무를 심고서는 하나하나를 다 정성들여 기른다.그렇건만 미끈하고 큰것이 있나 하면 못나고 작은것이 있다.그래도 잘 길러서 먹는 법이다』같은 밭에 같은 씨를 뿌렸건만 그 자라남은 그렇게 한결같지가 않다.고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라 해서 그와 다를 것이 없다.사람이 영위하는 사회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그 현실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어허,정녕 이게 섭리의 뜻이던가.<서울신문 논설위원>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유」에 의한 자살이 늘어났다는 기사.11월까지의 자살자 통계에 의할 때 그 총수는 1만9천4백41명인데 그중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자살자가 1천8백18명으로 집계되었다는 것이다.이는 그 전해에 비해 23%나 더 증가한 숫자인 것으로 알려진다.국제적인 장사를 잘 해서 큰 돈을 벌고 있는 세계제일 흑자국에서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니.왕청된 양달과 응달이다.
그건 반드시 일본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세계정세를 마름질하는 초강대국 미국에도 떠돌이 거지는 적지 않다.이른바 「홈리스」(집없는 사람들).도비할것없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90년3월,전국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수가 22만8천여명.조사되지 않은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숫자는 그 보다 훨씬 웃돌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수수방관하는 건 아니다.그래도 이 「배부른 거지들」은 줄지 않는 모양이다.남의 나라 걱정 할게 아니라 집안 건사부터 하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그러고 보면 많고 가멸지다 하여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겠다.오히려 많고 가멸져서 걱정인 경우를 갑부의 죽음과 그 자녀들의 애바른 피투성이 싸움에서도 볼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그래서 더더욱 「불환과이환불균」이라는 공자의 말은 명언이다 싶어진다.노나라 실권자 계씨의 가신으로 있는 염유를 꾸짖는 가운데 나온 말로서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그렇긴 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사는 사회란 본디 고르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일본 얘기로부터 시작했으니 18세기 일본 유학자의 「고르지 못함」에 대한 은유법을 한번 들어보자.경세실용의 학문으로 이름 높았던 호소이(세정평주)는 이렇게 말한다.『백성들이 무를 심고서는 하나하나를 다 정성들여 기른다.그렇건만 미끈하고 큰것이 있나 하면 못나고 작은것이 있다.그래도 잘 길러서 먹는 법이다』같은 밭에 같은 씨를 뿌렸건만 그 자라남은 그렇게 한결같지가 않다.고르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라 해서 그와 다를 것이 없다.사람이 영위하는 사회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그 현실속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어허,정녕 이게 섭리의 뜻이던가.<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01-0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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