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배/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7)

삼국시대의 배/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7)

정진술 기자 기자
입력 1992-07-15 00:00
수정 199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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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등 고분서 배모양토기 6점 출토/길이 7m 폭 2.6m… 13∼19명 승선 추정

삼국시대에 해상활동이 활발했다는 것은 문헌과 유물로 잘 알려져있다.그러나 배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가야나 경주지역의 고분에서 나온 토기들 밖에 없다.지금까지 대략 6점이 나왔는데 고무신이나 바가지처럼 생긴 것도 있고,완전한 배의 모습을 갖춘 것도 있다.이들은 하부구조만 서로 다를뿐 상부구조의 기본형태는 모두 비슷하다.그리고 이러한 배토기가 요동반도나 일본의 고분에서도 몇점 출토된 바가 있다.사진에서 보는,노를 12개 가진 호림박물관소장의 배토기를 실물크기로 복원한다면,노걸이의 간격을 80㎝로 잡았을때,배의 길이는 약7m이고,배의 최대폭은 약2·6m가량되며,승조원은 최소한 13명이 된다.또한 항양선(항양선)으로 썼을 때는 예비노군이 필요하므로 최소한 19명이 승선하게 된다.당시로서는 작지않은 배라고 볼수있다.배토기는 이 처럼 당시의 배에 관한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배토기가 삼국시대 배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당시 고분속의 하나의 부장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문헌에서도 보듯이 백제는 서기372년이 되면 중국남부의 동진(동진)에 최초로 사신을 파견하고 있는데,당시의 육지연안을 따라가는 그 항해거리는 2천㎞가 넘는 원거리이었다.수개월분의 식량과 적어도 10일 이상의 식수를 적재해야하고,파도나 비바람으로부터 물품과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간막이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원거리 항해선에게는 필수적이다.그런데 배토기들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볼수가 없다.이것은 다시 말해서 이들 배토기들보다는 훨씬 잘만든 배가 이미 4세기 무렵 또는 그 이전에는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당시는 나침반이 사용되기 훨씬 이전으로서,항해술은 바다가 잔잔한 낮에만 연안에 바짝붙어서 육지나 섬을 눈으로 보며 항해하다가,밤이 되거나 날씨가 안좋으면 인근 해안포구에 정박하는 것이었다.물론 6세기초가 되면 황해도와 산동반도간의 횡단항로가 이용되기 시작하였고,9세기에는 장보고가 해양을 제패하기도 하였다.<정진술 해사 박물관 학예실장>

1992-07-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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