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독서 경박학위… 친북인사권유로 입북/대남방송·간첩활동 염증느껴 탈출 결심
『단순한 학문적인 욕심에 조국을 배신했던 것이 한없이 죄스럽다』
22일 자수한 재독간첩 오길남씨는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으로 월북했으나 현실을 직접 보고는 한순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됐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오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왜 입북했나.
▲자본론등 공산주의 경제이론에 심취돼 북한이 모든 분야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 곳으로 착각했다.
85년 7월 브레멘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일정한 직업도 없이 아내마저 간염으로 앓아누워 생계가 어려웠다.
이때 재독 친북인사인 김종한씨(52)로부터 입북권유를 받고 북한 대남공작원에게 인계돼 입북하게 됐다.
북한에선 어떤 일을 했나.
▲11개월동안 대남방송요원으로 일했다.
대남방송요원으로 지난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이 있다는데.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한 성경희씨(46)와 연세대 도서관학과 출신인 정경숙씨(46)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억류된 신세를 애통해하며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탈출 동기는.
▲처음 입북할때는 경제학자로서 연구활동을 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나를 대남방송요원으로 이용하고 나중에는 간첩까지 시키는데 염증을 느끼게 됐다.
윤이상씨(75)를 비롯한 친북 해외인사들은 어떤 사람인가.
▲북한의 사주를 받을뿐만 아니라 북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탈출경위는.
▲당시 북한요원 1명과 함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니 북한의 동독주재대사가 마중 나왔다.
이들이 먼저 입국장밖으로 빠져나간 뒤 양말속에 숨겨뒀던 『망명을 도와달라』는 쪽지와 박사학위사본을 공항직원에게 몰래 건네준 뒤 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망명한 뒤부터의 생활은.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을 송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망명뒤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이 가능했나.
▲지난 87년 9월 윤이상이 김일성에게 자신의 노래를 바치기 위해 북한에 다녀와 아내의 편지를 전해줬다.
아내는 이 편지에서 입북당시 받은평양역 근처의 아파트를 떠나 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박대출기자>
『단순한 학문적인 욕심에 조국을 배신했던 것이 한없이 죄스럽다』
22일 자수한 재독간첩 오길남씨는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으로 월북했으나 현실을 직접 보고는 한순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됐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오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왜 입북했나.
▲자본론등 공산주의 경제이론에 심취돼 북한이 모든 분야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 곳으로 착각했다.
85년 7월 브레멘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일정한 직업도 없이 아내마저 간염으로 앓아누워 생계가 어려웠다.
이때 재독 친북인사인 김종한씨(52)로부터 입북권유를 받고 북한 대남공작원에게 인계돼 입북하게 됐다.
북한에선 어떤 일을 했나.
▲11개월동안 대남방송요원으로 일했다.
대남방송요원으로 지난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이 있다는데.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한 성경희씨(46)와 연세대 도서관학과 출신인 정경숙씨(46)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억류된 신세를 애통해하며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탈출 동기는.
▲처음 입북할때는 경제학자로서 연구활동을 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나를 대남방송요원으로 이용하고 나중에는 간첩까지 시키는데 염증을 느끼게 됐다.
윤이상씨(75)를 비롯한 친북 해외인사들은 어떤 사람인가.
▲북한의 사주를 받을뿐만 아니라 북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탈출경위는.
▲당시 북한요원 1명과 함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니 북한의 동독주재대사가 마중 나왔다.
이들이 먼저 입국장밖으로 빠져나간 뒤 양말속에 숨겨뒀던 『망명을 도와달라』는 쪽지와 박사학위사본을 공항직원에게 몰래 건네준 뒤 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망명한 뒤부터의 생활은.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을 송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망명뒤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이 가능했나.
▲지난 87년 9월 윤이상이 김일성에게 자신의 노래를 바치기 위해 북한에 다녀와 아내의 편지를 전해줬다.
아내는 이 편지에서 입북당시 받은평양역 근처의 아파트를 떠나 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박대출기자>
1992-05-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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