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콤플렉스/유재원 외대교수·언어학(굄돌)

영어콤플렉스/유재원 외대교수·언어학(굄돌)

유재원 기자 기자
입력 1992-04-11 00:00
수정 1992-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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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중학교 일학년부터 영어를 배워 짧게는 6년,길게는 10년을 넘게 영어를 배웠는데도 정작 외국인을 만나 말을 하려다 보면 한 마디도 입을 뗄 수가 없어 낭패감을 맛본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심지어 어떤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영어로 물 한 잔 달라는 말을 못하고 갈증을 그냥 참아야 했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런 하소연 끝엔 흔히 별로 교육도 없어 보이는 동남아 출신 선원들이나 기지촌에서 일하는 하우스보이들은 스스럼없이 외국인들과 농담까지 주고 받으며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하는데 밤새워 가며 영어를 공부한 자신은 왜 그렇지 못한가 하는 자조어린 넉두리가 끼어들곤 한다.

어째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집중 투자를 하여 공부한 영어가 이처럼 현장에서 맥을 못추고 마는 것일까? 무언가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힘들여 배워 가지고 써먹을 수 없는 영어,이는 개인적 손실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민족적 낭비이기도 하니 어떻게 해서든 진지하게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그래서 국민학교 교육과정에 영어과목을 끼워 넣으려고 안달이다.그러나 국민학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친다고 이 문제가 전혀 해결될 것 같지가 않으니 사정이 딱하다.문제의 핵심은 교육 방법에 있지 교육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대학 입시제도와 관계가 있는 것 같다.우리 나라의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입시 위주로 되고 있다.입시과목 중에서도 영어는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영어 실력에 의해 대학에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결판난다.그러니 자연 입시생들에게 영어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철자 하나가 틀려도,사소한 문법 하나가 틀려도 인생대사인 대학입학과 직결되는 것이다.「영어」소리만 들어도 주눅이 들어 버리는 마당에 어떻게 영어 회화가 되겠는가?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입시용으로 외운 영어가 현장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공부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영어문제」였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해결 방법은 분명하고도 단순하다.영어를 입시 과목에서 제외시켜 한국인들로 하여금 영어 콤플렉스를 갖지 않도록 하면 자연히 풀리는 문제이다.
1992-04-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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