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자 사살명령 논란속 「경관살해」로 피소/“소멸시효 30년 지났다” 변호인측 기각 요구
악명높은 구동독의 슈타시(비밀경찰)총수로 32년간 재임하면서 호네커공산당서기장에 이어 2인자 지위를 누렸던 에리히 밀케(84)가 법정에 섰다.구동독공산정권의 죄악에 대한 통일독일정부의 단죄를 통한 청산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베를린지방법원에서 10일 시작된 재판에서 밀케에게 적용된 혐의는 61년전인 1931년 청년공산당원으로서 시위도중 경찰간부 2명을 살해했던 살인죄다.피고인석에 방탄유리가 설치되는 등 삼엄한 경비속에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밀케는 이름을 확인한 것 외에는 묵비권행사로 일관했다.검찰측은 사건발생 3년후 밀케가 소련망명직전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이사건이 경찰의 노동자 살해 의혹에 대한 보복으로 사전모의된 것이라며 유죄를 주장했다.반면 변호인측은 이사건이 시위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상해치사로서 모의살인을 제외한 법정최고시효 30년이 넘었고 관련증인들이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범죄집단인 나치정권의 수사서류에 의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피고가 병자라는 이유 등을 내세워 기각을 요구했다.법원측은 피고가 고령인 점을 감안,주2회 각90분씩 재판을 계속하기로 해 재판결과가 주목되고있다.
검찰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던 시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이나 횡령 도청 선거부정 등 본질적인 문제를 이번에 다루지 못한 이유는 구동독의 통치행위를 현재 통일독일의 법률에 따라 사법처리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논란이 없지않기 때문이다.그러나 단순히 사살명령을 수행한 사병들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는데도 최고책임자들이 기소조차 되지않고 있는데 대한 비판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 우선 증거가 확실하고 단순한 사건을 택한 것이다.<김주혁기자>
악명높은 구동독의 슈타시(비밀경찰)총수로 32년간 재임하면서 호네커공산당서기장에 이어 2인자 지위를 누렸던 에리히 밀케(84)가 법정에 섰다.구동독공산정권의 죄악에 대한 통일독일정부의 단죄를 통한 청산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베를린지방법원에서 10일 시작된 재판에서 밀케에게 적용된 혐의는 61년전인 1931년 청년공산당원으로서 시위도중 경찰간부 2명을 살해했던 살인죄다.피고인석에 방탄유리가 설치되는 등 삼엄한 경비속에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밀케는 이름을 확인한 것 외에는 묵비권행사로 일관했다.검찰측은 사건발생 3년후 밀케가 소련망명직전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이사건이 경찰의 노동자 살해 의혹에 대한 보복으로 사전모의된 것이라며 유죄를 주장했다.반면 변호인측은 이사건이 시위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상해치사로서 모의살인을 제외한 법정최고시효 30년이 넘었고 관련증인들이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범죄집단인 나치정권의 수사서류에 의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피고가 병자라는 이유 등을 내세워 기각을 요구했다.법원측은 피고가 고령인 점을 감안,주2회 각90분씩 재판을 계속하기로 해 재판결과가 주목되고있다.
검찰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던 시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이나 횡령 도청 선거부정 등 본질적인 문제를 이번에 다루지 못한 이유는 구동독의 통치행위를 현재 통일독일의 법률에 따라 사법처리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한 논란이 없지않기 때문이다.그러나 단순히 사살명령을 수행한 사병들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는데도 최고책임자들이 기소조차 되지않고 있는데 대한 비판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 우선 증거가 확실하고 단순한 사건을 택한 것이다.<김주혁기자>
1992-02-1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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