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기업 없어야죠”/분유 광고금지·수입품 농약감시 큰 보람 /매일 40∼50건 고발과 씨름하다 보면 하루해 너무 짧아/생명 위협 원색적 전화·회유 공작땐 고통
우리나라 소비자 보호 운동 22년 역사의 증인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김재옥 사무처장(45).바로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의 선사시대이기도 했던 서울 YWCA시절부터 역사시대격인 소비자 보호단체협의회시대로 이어지는 민간 소비자단체의 활동현장에서 온몸으로 소비자 운동을 펴온 유일한 국내 활동가이다.
추가 하루일과는 새벽 6시 기상으로 시작된다.평범한 가정주부로 아침준비를 해놓고 밤새 공부하다 깊은 잠에 빠져든 대학입시 준비생 큰아들과 고1짜리 딸애를 잠자리에서 끌어낸다.아이들의 등교준비를 거들고 남편의 출근길마저 지켜본후에는 부랴부랴 서둘러 상오10시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또 다른 하루일과가 기다리고 있다.직원들과 하루 계획을 짜노라면 어느새 고발전화의 벨소리가 밀려오기 시작한다.시민의 모임의 도움을 청하는 고발 건수는 자그마치 하루 40,50건.하오5시를 전후해 하루생활을 정리하는 회의를 마치기 무섭게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원색적인 협박을 받는 일은 많았습니다.때로는 회유도 받았고 또 흑색선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일도 많았지요』
그가 소비자 보호운동에 나섰던 시절은 우리나라가 산업화 사회로 들어서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대량생산과 함께 대량소비를 예고하는 조짐이 보이긴 했어도 소비자에 대한 개념은 전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 편에 서기 시작했다.
『건전한 시민정신이 활짝 꽃피울때 사회가 발전하는 것입니다.그것은 신뢰하는 사회일 수도 있습니다.소비자문제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봅니다.생산자는 만드는 보람을 가져야하고 소비자는 갖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비자 운동의 선구자로 김씨가 소비자 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9년.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소비자 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YWCA에 발을 들여놓았다.당시 YWCA 사회연구팀에서는 뚜렷이 소비자 보호라는 목적의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채 사회문제의 한부분으로 불량상품전시회 또는 우량상품전시회를 마련하고 불량만화 추방운동,화장품의 부작용실험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인식을 전환시켰다.YWCA의 이런 활동들이 하나둘 여기저기 알려지다보니 주부 소비자들로부터 하소연겸 격려 섞인 볼멘 소리들이 전화선을 타고 날아들기 시작했었다고 회고한다.
『새우젓 용기가 불결하다느니,티스푼의 날이 날카로워 입을 다쳤다는등 고발사례들로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오늘날 소비자운동의 대표적 활동인 고발창구 역할의 효시가 된 셈이죠』
그후 소비자 운동과의 끈은 서울 YWCA소비자 고발센터의 간사를 거쳐 73년 민간소비자단체 대표들의 모임인 소비자위원회 위원,78년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그리고 이화여대 대학원에 들어간 82년 시민의 모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83년부터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자리를 지켜오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소비자 운동 역정이 순탄하게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27살때인 73년결혼을 하면서 가정과 소비자운동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또 78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으로 4년째 일하던 82년,소비자운동의 이론적 뒷받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론부재의 갈등을 대학원진학으로 극복해 나갔다.
『소비자들의 격려와 관심이 크면 큰 사안일수록 돈문제,정치적 야심운운하는 식으로 흑색선전은 극성을 부리더군요.소비자 보호단체에서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전문지식도 없다고 몰아붙이는 게 도식화된 소비자 단체 방해활동의 정형이기도 합니다』
시민의 모임에서 지난 83년 모유먹이기 캠페인을 전개할때,84년 맹독성 농약 과다 사용문제를 거론할 때가 그랬고 85년의 화학조미료 시비때도 수난을 겪었다는 것이다.그밖에 최근 수입과일에서 유해 농약이 검출되어 이를 세상에 공표할때도 매한가지였고 부작용때문에 유엔에서 사용금지한 의약품 시판을 문제삼는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사안들을 문제삼으면 으레 방해가 뒤따랐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목전의 사소한 이익에 연연해서 올바른지적을 바로 잡으려하지 않고 소비자 운동을 사업경영의 걸림돌로 치부하는 생산업체는 이제 크게 사회흐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또 땀을 흘려 씨뿌리기는 기피하면서도 「나 하나쯤」열매는 따먹어도 되겠지하는 개인적 이기심을 떨쳐버리는 사회일반의 자세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세계 최강임을 자랑하는 미국이 최강국인 것은 국방력이 강해서뿐만이 아닙니다.「자원 봉사자 정신」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민간소비자단체도 국민들의 참여의식을 바탕으로한 동참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순수성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우리나라의 소비자 운동도 이제는 단순히 소비자 피해구제 차원을 떠나 소비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켜나가야 합니다』
지난 84년 주택임대차 보호법 제정운동을 벌인 끝에 결실을 보았고 87년 약관규제법 초안을 마련,정부와 국회에 청원함으로써 제정되는 성과며 지난 5월부터는 분유광고 안하기등 그간 잘못된 소비 문화의 커다란 흐름을 바꾸어 놓은 일련의 결과들이 바로 새로운 방향의 좋은 예라고 말한다.<정인학기자>
우리나라 소비자 보호 운동 22년 역사의 증인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김재옥 사무처장(45).바로 우리나라 소비자 운동의 선사시대이기도 했던 서울 YWCA시절부터 역사시대격인 소비자 보호단체협의회시대로 이어지는 민간 소비자단체의 활동현장에서 온몸으로 소비자 운동을 펴온 유일한 국내 활동가이다.
추가 하루일과는 새벽 6시 기상으로 시작된다.평범한 가정주부로 아침준비를 해놓고 밤새 공부하다 깊은 잠에 빠져든 대학입시 준비생 큰아들과 고1짜리 딸애를 잠자리에서 끌어낸다.아이들의 등교준비를 거들고 남편의 출근길마저 지켜본후에는 부랴부랴 서둘러 상오10시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또 다른 하루일과가 기다리고 있다.직원들과 하루 계획을 짜노라면 어느새 고발전화의 벨소리가 밀려오기 시작한다.시민의 모임의 도움을 청하는 고발 건수는 자그마치 하루 40,50건.하오5시를 전후해 하루생활을 정리하는 회의를 마치기 무섭게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원색적인 협박을 받는 일은 많았습니다.때로는 회유도 받았고 또 흑색선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일도 많았지요』
그가 소비자 보호운동에 나섰던 시절은 우리나라가 산업화 사회로 들어서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대량생산과 함께 대량소비를 예고하는 조짐이 보이긴 했어도 소비자에 대한 개념은 전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자 편에 서기 시작했다.
『건전한 시민정신이 활짝 꽃피울때 사회가 발전하는 것입니다.그것은 신뢰하는 사회일 수도 있습니다.소비자문제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봅니다.생산자는 만드는 보람을 가져야하고 소비자는 갖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비자 운동의 선구자로 김씨가 소비자 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9년.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소비자 운동의 발상지인 서울 YWCA에 발을 들여놓았다.당시 YWCA 사회연구팀에서는 뚜렷이 소비자 보호라는 목적의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채 사회문제의 한부분으로 불량상품전시회 또는 우량상품전시회를 마련하고 불량만화 추방운동,화장품의 부작용실험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인식을 전환시켰다.YWCA의 이런 활동들이 하나둘 여기저기 알려지다보니 주부 소비자들로부터 하소연겸 격려 섞인 볼멘 소리들이 전화선을 타고 날아들기 시작했었다고 회고한다.
『새우젓 용기가 불결하다느니,티스푼의 날이 날카로워 입을 다쳤다는등 고발사례들로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오늘날 소비자운동의 대표적 활동인 고발창구 역할의 효시가 된 셈이죠』
그후 소비자 운동과의 끈은 서울 YWCA소비자 고발센터의 간사를 거쳐 73년 민간소비자단체 대표들의 모임인 소비자위원회 위원,78년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그리고 이화여대 대학원에 들어간 82년 시민의 모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83년부터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자리를 지켜오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소비자 운동 역정이 순탄하게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27살때인 73년결혼을 하면서 가정과 소비자운동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또 78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처장으로 4년째 일하던 82년,소비자운동의 이론적 뒷받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론부재의 갈등을 대학원진학으로 극복해 나갔다.
『소비자들의 격려와 관심이 크면 큰 사안일수록 돈문제,정치적 야심운운하는 식으로 흑색선전은 극성을 부리더군요.소비자 보호단체에서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전문지식도 없다고 몰아붙이는 게 도식화된 소비자 단체 방해활동의 정형이기도 합니다』
시민의 모임에서 지난 83년 모유먹이기 캠페인을 전개할때,84년 맹독성 농약 과다 사용문제를 거론할 때가 그랬고 85년의 화학조미료 시비때도 수난을 겪었다는 것이다.그밖에 최근 수입과일에서 유해 농약이 검출되어 이를 세상에 공표할때도 매한가지였고 부작용때문에 유엔에서 사용금지한 의약품 시판을 문제삼는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사안들을 문제삼으면 으레 방해가 뒤따랐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목전의 사소한 이익에 연연해서 올바른지적을 바로 잡으려하지 않고 소비자 운동을 사업경영의 걸림돌로 치부하는 생산업체는 이제 크게 사회흐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또 땀을 흘려 씨뿌리기는 기피하면서도 「나 하나쯤」열매는 따먹어도 되겠지하는 개인적 이기심을 떨쳐버리는 사회일반의 자세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세계 최강임을 자랑하는 미국이 최강국인 것은 국방력이 강해서뿐만이 아닙니다.「자원 봉사자 정신」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민간소비자단체도 국민들의 참여의식을 바탕으로한 동참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순수성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우리나라의 소비자 운동도 이제는 단순히 소비자 피해구제 차원을 떠나 소비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켜나가야 합니다』
지난 84년 주택임대차 보호법 제정운동을 벌인 끝에 결실을 보았고 87년 약관규제법 초안을 마련,정부와 국회에 청원함으로써 제정되는 성과며 지난 5월부터는 분유광고 안하기등 그간 잘못된 소비 문화의 커다란 흐름을 바꾸어 놓은 일련의 결과들이 바로 새로운 방향의 좋은 예라고 말한다.<정인학기자>
1991-09-0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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