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안판 재벌「여신중단」 “할까”“말까”/은감원,극약처방놓고 고심

땅 안판 재벌「여신중단」 “할까”“말까”/은감원,극약처방놓고 고심

권혁찬 기자 기자
입력 1991-04-27 00:00
수정 1991-04-2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더 이상 방치 못해” 정부선 강경론/단행땐 하루아침에 줄줄이 도산/여론향배 따라 「전면」·「일부」 조치중 택일 가능성

비업무용 땅을 팔지 않은 재벌에 대해 신규여신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질 것인가.

정부가 기회있을 때마다 밝혀온 신규여신중단조치가 과연 발동될 것인가에 당사자인 재계와 금융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규여신중단은 말 그대로 기업의 돈줄을 끊는 일이다. 기업들이 하루하루 결제하는 당좌계정의 대출은 물론 기한만료된 대출금도 연장되지 않고 즉각 회수되는 충격적 조치다.

충격적인 조치인지라 여신관리와 관련해 이제까지 발동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규여신중단은 살아있는 기업을 곧바로 도산시킬 수 있는 「금융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업이 장사를 아무리 잘해도 흑자도산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강도높은 금융제재이기 때문이다.

멀리 거슬러올라갈 것도 없이 5공시절 주거래은행이 국제그룹에 대출을 전면중단함으로써 그룹 전체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던 사실에서도 여신중단의 효력을 읽을 수 있다.

신규여신중단은 여신관리규정상 해당기업에만 취하도록 돼 있지만 국내 재벌의 대부분이 계열사간 상호보증으로 자금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계열사 부도는 그룹사활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더욱이 신규여신중단조치가 제1금융권에 해당하는 것이긴 하나 정부가 이 조치를 단행했을 때 단자나 보험·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의 금융기관들이 나서서 문제의 기업에 돈을 대줄 리는 만무한 일이다.

따라서 여신중단조치는 계열사에 대한 금융권의 전면적인 여신중단으로 이어져 기업이 망하거나 기업으로 하여금 땅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몰고가는 극단적인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노재봉 국무총리는 25일 국회답변에서 『땅을 팔지 않은 기업에 신규여신을 중단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해 신규여신중단이라는 강수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런 가운데 5·8대책의 실무를 맡아온 은행감독원이 신규여신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써야 하는가를 놓고 요즘 고민에 빠졌다. 은행감독원은 지난달 4일 재벌의비업무용 땅 처분실적을 발표할 때만 해도 매각불응기업에 대해서는 연체이자 부과 등 금융상 불이익은 물론 여신중단조치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규여신중단조치의 발동시점은 매각시한이 지나고 2∼3개월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던 은행감독원의 입장이 최근 신중론으로 기울고 있다. 요약하면 신규여신중단은 기업도산으로 이어지는 극약인데다 자칫 정책당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발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정부와 기업이 서로 극단적인 대치상태로 치닫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을 뿐더러 한두 기업도 아니고 수십 개 기업을 하루아침에 쓰러뜨릴 수 있는 여신중단을 쉽게 취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얘기다.

규정에 명시돼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상기업이 극히 제한적이거나 국가경제에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될 때 이루어져야지 40개 기업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형태로 단행될 경우 뒷감당이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남양만 부지를 처분하지 않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신규여신을 중단할 경우 곧 현대자동차의 도산으로 이어지고 수출타격 등 국가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롯데 한진 대성산업 금호 쌍용그룹 등 유수의 국내 간판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질 수 있는 극약사용을 섣불리 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금융상의 불이익 제재가 충분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은행감독원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감독원이 독자적으로 매각불응기업에 신규여신을 중단하기는 어렵다』며 『5·8대책 자체가 정부의 부동산대책실무위원회에서 결정된만큼 신규여신중단 등 고단위처방은 부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부동산실무대책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5·8대책이 긴급명령의 성격을 띠었던만큼 정부차원에서 각종 인·허가나 회사채발행제한 등 여신관리규정에서 정하고 있지 않은 제재를 강구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은행감독원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정부 쪽에서는 다소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리부터 해당기업의 도산을 가상해 여신중단조치를 아예 접어둔다는 것은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신중단조치로 기업이 도산위기에 몰리면 땅을 팔지 말라고 해도 팔 것이라는 논지인 것이다.

5·8대책이 취해진 지 1년이 다되는 시점에서 일부재벌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어가면서 땅매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어떤 형태로든 여신중단조치가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정부가 갖고 있는 기업관련 인·허가와 회사채발행 제한은 근거규정이 희박하다며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튼 매각불응기업에 대한 신규여신중단은 정책당국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5·8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가까워 오면서 5·8대책의 평가가 서서히 여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데다 기존의 금융상 제재를 재벌들이 고통없이 견디고 있는 대목도 정책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이다.

현재로선 전면적인 여신중단이 내려지지않을 가능성이 다소 높은 게 사실이지만 여론의 향배에 따라 5·8대책과 같이 긴급명령의 형태로 가시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전면적인 여신중단보다 기업의 불요불급한 자금이나 정책자금을 제외하고 운전자금 등 일부 여신에 국한되는 제한적 여신중단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권혁찬 기자>
1991-04-27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