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음악회」 참석하러 귀국/작곡자 안병원옹/“40년간 애창… 통일 안된 현실 안타까워/이산가족도 많은데 특혜같아 방북 초청 거절”
노래의 제목 「우리의 소원」의 작곡자 안병원씨(63)가 서울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기위해 지난 5일밤 일시 귀국했다.
오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시립 소년소녀합창단 송년 공연무대에서 이날의 피날레가 될 「우리의 소원」합창을 지휘할 안씨는 공연에 앞서 세종문화회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잠시 기자들과 만났다.
그가 만든 이 한 곡의 노래 「우리의 소원」이 40년을 한결같이 애창돼 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운 한편,그래도 예술가로선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안씨의 첫마디다.
『가사를 잘 써주신 선친 덕에 제가 이제와서 덕을 보고 귀한 열매를 맺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 노래가 곧 「흘러간 노래」가 돼 버리도록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하는 겁니다』
지난해 7월 임수경양의 입북사건 이후 그의 노래가 북한에서 급격히 퍼져 나갔고 북쪽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안씨를 방북하도록 초청했으나 북한 방문을 단호히 거절했던 안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 고향은 서울입니다. 그곳에 연고가 전혀 없는 내가 아직 수많은 이산가족도 상봉 못하는 현실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제가 서울음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47년 아버님께서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의 3·1독립운동기념 어린이 노래극 노랫말을 쓰시고 제게 곡을 붙이라 하셨죠. 믿음이 깊었던 전 가사를 뇌며 많은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불현듯 악상이 떠올랐어요. 1시간만에 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가 1948년 자주 국가로 독립이 되는 대신 남과 북이 갈라진 현실속에서 「독립」이 「통일」로 바뀌는 운명을 맞게 됐다. 지난 48년부터 이 노래는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됐는데 이 때 작사자인 고 안석주씨(안씨의 부친)와 작곡가 안씨의 동의를 얻어 노랫말이 「우리의 소원은 독립」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어 책에 실린 것이다.
캐나다 이민후 이번까지 세번째 고국을 찾은 안씨는 이번 일시귀국이 어느 때보다 감개무량하고 뜻깊다고 밝혔다.<이헌숙기자>
노래의 제목 「우리의 소원」의 작곡자 안병원씨(63)가 서울 무대에서 지휘봉을 잡기위해 지난 5일밤 일시 귀국했다.
오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시립 소년소녀합창단 송년 공연무대에서 이날의 피날레가 될 「우리의 소원」합창을 지휘할 안씨는 공연에 앞서 세종문화회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잠시 기자들과 만났다.
그가 만든 이 한 곡의 노래 「우리의 소원」이 40년을 한결같이 애창돼 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운 한편,그래도 예술가로선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안씨의 첫마디다.
『가사를 잘 써주신 선친 덕에 제가 이제와서 덕을 보고 귀한 열매를 맺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 노래가 곧 「흘러간 노래」가 돼 버리도록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하는 겁니다』
지난해 7월 임수경양의 입북사건 이후 그의 노래가 북한에서 급격히 퍼져 나갔고 북쪽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안씨를 방북하도록 초청했으나 북한 방문을 단호히 거절했던 안씨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 고향은 서울입니다. 그곳에 연고가 전혀 없는 내가 아직 수많은 이산가족도 상봉 못하는 현실에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제가 서울음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47년 아버님께서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의 3·1독립운동기념 어린이 노래극 노랫말을 쓰시고 제게 곡을 붙이라 하셨죠. 믿음이 깊었던 전 가사를 뇌며 많은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불현듯 악상이 떠올랐어요. 1시간만에 곡을 완성했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가 1948년 자주 국가로 독립이 되는 대신 남과 북이 갈라진 현실속에서 「독립」이 「통일」로 바뀌는 운명을 맞게 됐다. 지난 48년부터 이 노래는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됐는데 이 때 작사자인 고 안석주씨(안씨의 부친)와 작곡가 안씨의 동의를 얻어 노랫말이 「우리의 소원은 독립」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바뀌어 책에 실린 것이다.
캐나다 이민후 이번까지 세번째 고국을 찾은 안씨는 이번 일시귀국이 어느 때보다 감개무량하고 뜻깊다고 밝혔다.<이헌숙기자>
1990-12-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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