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발해고분 첫 공동발굴/서울신문조사단ㆍ연변박물관팀,길림성서

한ㆍ중,발해고분 첫 공동발굴/서울신문조사단ㆍ연변박물관팀,길림성서

황규호 기자 기자
입력 1990-10-07 00:00
수정 1990-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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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몫 유골ㆍ토기다수 발견/“한민족여부 가려낼 중요한 사료”

【연변=황규호특파원】 서울신문사 중국 동북3성 역사유적 학술조사단은 언론사상 최초로 지난1일부터 발해유적발굴현장에 참여했다. 국내 저명 사학자 및 고고학자로 구성된 서울신문사 학술조사단은 연변박물관이 실시하고 있는 길림성 안국현 영경 동청촌 발해무덤에서 토기 등의 유물과 당시 발해사람들의 인골을 확인함으로써 발해삼채도기조사(서울신문 9월25일 보도)에 이은 두번째 학술조사성과를 거두었다.<관련기사 11면>

연변박물관이 현재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발해무덤 군은 모두 11기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첫번째 발굴한 무덤에서는 당시 발해사람들을 형질인류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7인몫의 인골과 토기편이 쏟아져 나왔다. 토기편이외의 다른 껴묻거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전에 도굴당한 무덤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발굴한 10기의 무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발해문화의 실체를 규명할 유물들이 또 한차례 출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북길이 3m,동서너비 2.5m인 이 무덤은 북옥저 사람들의 무덤을 토대로 고구려사람들의 무덤형태를 추가로 받아들인 굴식돌방흙무덤(수헐식 석실봉토분)으로,발해시기에 유행한 다장풍속을 보여주었다. 발굴현장에서 인골을 감정한 서울대 최몽룡교수(고고학)는 7인몫의 인골가운데 단 1명만이 여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남자인 것으로 가려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듯한 피장자는 키 1m70㎝ 나이 30세 정도의 남자로 추정되었으며 무덤속 남서쪽 모서리에 묻혔던 30∼35세 정도의 남자자뼈(척골)에서는 칼을 맞았던 깊은 상처흔적을 찾아냈다.

이 무덤군이 자리한 안국현 영경 동청촌은 목단강 지류 고동하를 지척에 둔 발해주요교통로상의 요충지. 고동하를 따라 북상하면 목단강 유역의 발해 세번째 도읍지 상경 용천부(오늘의 흑룡강성 발해진 동경성)로 이어질 뿐 아니라 용천부에서 두번째 도읍지 현덕부(오늘의 길림성 화용현 두도구)를 거쳐 당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동북3성에 대한 학술조사는 해방전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대가 민속분야에 국한해 실시했을뿐 유적발굴 현장참여는 이번 서울신문사 역사유적조사단이 처음이다.
1990-10-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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