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손님」을 맞는 「서울시민들」(사설)

「평양손님」을 맞는 「서울시민들」(사설)

입력 1990-09-05 00:00
수정 1990-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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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통일로는 쾌적하고 아름답다. 그 길을 따라 「평양손님」들은 달려왔다. 우리가 만든 승용차에 우리가 만든 버스를 타고 정중하게 예를 갖춘 영접을 받으면서 기다랗게 행렬을 이룬 일행을 보며 길가던 「서울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박수를 보냈다.

비슷한 행렬은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평양손님들은 기왕의 내객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 일행이다. 직함에 맞는 격식과 예를 완벽하게 갖추어 맞아들인 손님인 것이다. 그것은 자리가 「고위」라는 뜻만이 아니다. 정식으로 「양측 정부」가 만나는 의미를 지닌다.

판문점에서 연형묵총리가 도착성명으로 한 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지난날의 「외통길」 대신 사방으로 트인 자유로운 길을 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쓴 이 「외통길」이란 말이 매우 신선했다. 우리측은 잘 쓰지 않지만 명료하게 뜻을 전달받을 수 있는 우리말이다. 군사분계선이 있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놓여있는 길,그 길은 분명 멍텅구리처럼 막혀있는 「외통길」이다. 말에 배어있는 정서를 설명없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는 한 조상의 후예끼리다. 그런 서로가 손님으로 만나는 일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자꾸 만나느라면 녹슬었던 말들을 꺼내놓고 닦아서 윤기가 돌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악재에 나가 평양손님 오는 것을 기다리던 서울시민은 기꺼운 목소리로 『진심으로 환영』을 했고,공덕동에 서있던 시민도 『… 아주 반갑다』는 말을 커다랗게 외쳤다. 『내가 모는 관광버스에 하나 가득 손님을 태우고 금강산까지 시원스럽게 달려서 관광을 시켜드리고 싶은 것이 소원인 운전기사와,사이클을 타고 통일로를 달려 평양까지 거침없이 다녀왔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젊은 사이클클럽 회원도 길목에 나왔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건만 멈춰서서 손을 흔들고 반가워서 손뼉을 치는 서울시민들. 그 시민들을 북에서 온 손님들도 많이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서울 사람들이 평양사람 반기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친화로운 것인지 북쪽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우리는 진심으로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가장 큰 고통은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경계해야 했던 「세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앞날 또한 서로의 사이에 미움과 갈등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증폭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냥두고 우리는 통일로 가는 길을 진행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신에 가득차서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없었던 체질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우리들이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던 일은 대견하다. 이 대견함의 작은 씨앗을 땅에 묻어 싹도 틔게 해야 하고 꽃피워 열매 맺게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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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면 이 씨앗을 소중하게 갈무리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흙속에서 싹을 틔우고 작은 순을 밖으로 솟아나게 하기까지만도 어느 한 과정도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유난히 마음이 넓고 정이 많은 서울 시민들은 충분히 그럴줄을 안다. 훈훈한 가슴을 열고 평양손님을 반기는 것도 그런 성정의 발로이다. 북에서 온 대표단도 그 마음을 받기 위해 넓은 도량을 보이리라고 믿는다. 그렇게 한다면 이번 기회에 우리는 「신뢰」의 단서를 서로 나눠 갖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수확이 또 있겠는가.
1990-09-0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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