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패권 거머쥐려 침략도 불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줄곧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 온 중동의 야심가. 자신은 스스로를 「바그다드의 기사」로 칭하고 있으나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부른다.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부 티그리스강변의 티크리트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9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읜채 숙부 밑에서 자랐다. 18세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혁명당인 바트당에 입당했으며 1956년에는 친영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 59년 당시의 압델 카림 카셈총리 암살사건에 가담했다가 이집트로 망명했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귀국했으며 9개월후 바트당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자 체포돼 복역하기도 했다. 66년 석방된 그는 68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재집권하자 혁명위원회 부의장겸 부통령으로 임명되는 등 정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구축했다.
79년 42세에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이 된 그는 총리ㆍ총사령관ㆍ혁명위원회 위원장ㆍ바트당총재직을 모두 장악,독재권력의 기반을 확보했다.
중동패권 장악의 꿈을 가진 그는 지난 75년 이란ㆍ이라크 양국이 체결한 수로협정이 불평등하다며 1980년 혁명직후의 이란을 침공,중동역사상 가장 긴 8년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란의 반격으로 한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미국 및 이란혁명을 두려워 하는 온건 아랍국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지원,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정치술수로 오히려 정권기반을 단단하게 구축했다.
철권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우상화를 꾀하는 등 절대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뒤에도 중동에서의 패권장악을 위해 군비증강을 부르짖었으며 특히 핵무기ㆍ화학무기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역점을 두어 왔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기간중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핵무기와 화학무기개발용 부품수입 문제로 미국ㆍ영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초래해 왔다.
그의 대통령취임후 모두 7번의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다.
수니파 회교도인 그는 1963년 사촌인 사지다 톨파여사와 결혼,5자녀를 두고 있다.<김현철기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7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줄곧 중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해 온 중동의 야심가. 자신은 스스로를 「바그다드의 기사」로 칭하고 있으나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부른다.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부 티그리스강변의 티크리트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9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읜채 숙부 밑에서 자랐다. 18세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혁명당인 바트당에 입당했으며 1956년에는 친영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 59년 당시의 압델 카림 카셈총리 암살사건에 가담했다가 이집트로 망명했다.
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귀국했으며 9개월후 바트당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자 체포돼 복역하기도 했다. 66년 석방된 그는 68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재집권하자 혁명위원회 부의장겸 부통령으로 임명되는 등 정상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구축했다.
79년 42세에 평화적 정권교체로 대통령이 된 그는 총리ㆍ총사령관ㆍ혁명위원회 위원장ㆍ바트당총재직을 모두 장악,독재권력의 기반을 확보했다.
중동패권 장악의 꿈을 가진 그는 지난 75년 이란ㆍ이라크 양국이 체결한 수로협정이 불평등하다며 1980년 혁명직후의 이란을 침공,중동역사상 가장 긴 8년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란의 반격으로 한때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미국 및 이란혁명을 두려워 하는 온건 아랍국 사우디와 쿠웨이트의 지원,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정치술수로 오히려 정권기반을 단단하게 구축했다.
철권독재정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우상화를 꾀하는 등 절대적 지위를 장악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끝난뒤에도 중동에서의 패권장악을 위해 군비증강을 부르짖었으며 특히 핵무기ㆍ화학무기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역점을 두어 왔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기간중 화학무기의 사용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핵무기와 화학무기개발용 부품수입 문제로 미국ㆍ영국 등과 외교적 마찰을 초래해 왔다.
그의 대통령취임후 모두 7번의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다.
수니파 회교도인 그는 1963년 사촌인 사지다 톨파여사와 결혼,5자녀를 두고 있다.<김현철기자>
1990-08-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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