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언론이 우리 공직자 사회의 부정부패를 꼬집는 일이 왕왕 있다. 바로 얼마전에 발행된 홍콩의 한 월간지 3월호의 경우도 그것이다. 이 월간지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먼저 부패부터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표현의 과장이나 사안의 오류가 끼일 수도 있다고는 하겠으나 이런 지적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부끄러우나마 우리의 현실이다.
법무부의 집계도 공무원 범죄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를 뒷받친다. 금품수수등으로 적발된 공무원이 작년 한햇동안 1천5백92명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85년의 8백87명에 비긴다면 1.8배 증가한 셈이다. 적발된 숫자가 그렇다는 것뿐 적발되지 않은 숫자는 또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6공출범을 전후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화라는 이름아래 사회기강이 많이 느슨해졌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갖가지 욕구 분출의 와중에서 각종 반사회 행위도 증가해 온 것을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낀다. 공직자의 비리도 거기 가세하는 것임을 앞서의 통계숫자가 알려준다. 비록 비리에 가세하지 않은 경우라 해도 보신을 위해 눈치를 살피며 무사안일주의로 많이 흘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28일의 사정장관회의는 공직자 사회에 새 정신운동을 벌여나기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 운동이 일반 사회로까지 확산되어 범국민적인 도덕 재무장운동으로 발전될 것까지를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의 회의는 그를 위한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하여 정부의 강력한 실천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구공직자 사회 자숙ㆍ자정의 노력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때의 결의에 그치는 구두선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보아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새 정신운동도 그 같은 용두사미의 전철을 밟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갖게 한다. 모처럼의 결의에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결의가 그러했기에 연상작용으로 갖게 되는 우려일 뿐이다.
이 일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첫째 윗물부터 맑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날의 경우와 같이 피라미 잡는 것으로써 마치 공직사회가 쇄신된 것처럼 군다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높은 도덕성은 윗물의 정화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물론 보수도 현실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직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자세의 공직자가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이 현실로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공무 수행보다는 줄 대기나 뇌물 바치기 잘하는 사람이 영전하고 출세하고 하는 전철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새 정신운동은 실을 거두기가 어렵다. 얼마 전 현대사회연구소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구조 조사 결과가 말해 주는 것도 그것이다. 응답자의 83%가 능력보다는 배경이 좋아야 출세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같은 풍토부터 쇄신하는 것이 공직자 새 정신운동의 밑바탕이 된다고 할 것이다.
어찌 공직자 사회 뿐이겠는가. 공정하고 정당하고 준법하는 사람이 외롭지 않을 때 사회기강은 스스로 바로잡혀 간다고 할 것이다. 나타난 부정을 징치하는 것은 최선책이 못된다. 어째서 자숙ㆍ자정 노력이 실패했던가를 먼저 성찰하는 것으로써 새 정신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제언한다.
법무부의 집계도 공무원 범죄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를 뒷받친다. 금품수수등으로 적발된 공무원이 작년 한햇동안 1천5백92명이었다는 것인데 이는 85년의 8백87명에 비긴다면 1.8배 증가한 셈이다. 적발된 숫자가 그렇다는 것뿐 적발되지 않은 숫자는 또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6공출범을 전후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화라는 이름아래 사회기강이 많이 느슨해졌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갖가지 욕구 분출의 와중에서 각종 반사회 행위도 증가해 온 것을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낀다. 공직자의 비리도 거기 가세하는 것임을 앞서의 통계숫자가 알려준다. 비록 비리에 가세하지 않은 경우라 해도 보신을 위해 눈치를 살피며 무사안일주의로 많이 흘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28일의 사정장관회의는 공직자 사회에 새 정신운동을 벌여나기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 운동이 일반 사회로까지 확산되어 범국민적인 도덕 재무장운동으로 발전될 것까지를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의 회의는 그를 위한 세부적인 지침을 마련하여 정부의 강력한 실천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구공직자 사회 자숙ㆍ자정의 노력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때의 결의에 그치는 구두선이었음을 우리 모두는 보아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새 정신운동도 그 같은 용두사미의 전철을 밟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갖게 한다. 모처럼의 결의에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결의가 그러했기에 연상작용으로 갖게 되는 우려일 뿐이다.
이 일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첫째 윗물부터 맑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날의 경우와 같이 피라미 잡는 것으로써 마치 공직사회가 쇄신된 것처럼 군다면 결과는 보나마나다. 높은 도덕성은 윗물의 정화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물론 보수도 현실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직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올바른 자세의 공직자가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이 현실로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공무 수행보다는 줄 대기나 뇌물 바치기 잘하는 사람이 영전하고 출세하고 하는 전철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새 정신운동은 실을 거두기가 어렵다. 얼마 전 현대사회연구소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구조 조사 결과가 말해 주는 것도 그것이다. 응답자의 83%가 능력보다는 배경이 좋아야 출세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같은 풍토부터 쇄신하는 것이 공직자 새 정신운동의 밑바탕이 된다고 할 것이다.
어찌 공직자 사회 뿐이겠는가. 공정하고 정당하고 준법하는 사람이 외롭지 않을 때 사회기강은 스스로 바로잡혀 간다고 할 것이다. 나타난 부정을 징치하는 것은 최선책이 못된다. 어째서 자숙ㆍ자정 노력이 실패했던가를 먼저 성찰하는 것으로써 새 정신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제언한다.
1990-03-2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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