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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90년대부터 지속적인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

北, 90년대부터 지속적인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

입력 2013-03-06 00:00
업데이트 2013-03-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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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5일 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에서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면서 위협 수위를 높였지만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는 1990년대부터 수차례 있었다.

우선 19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군정위) 유엔군 측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이 임명된 것에 반발해 군정위 본회의 불참을 선언했고 그 다음 달에는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의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정전협정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93년 1월 당시 중감위 회원국이었던 체코연방이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자 이를 구실로 그해 4월 중감위 체코 대표단을 강제로 철수시키기도 했다.

다음해 4월 북한은 당시 외교부 명의로 “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실제로 믿음직하게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평화보장 체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을 미국에 제기한다”고 성명을 발표하고 나서 군정위 북측 대표단을 판문점에서 철수시켰다. 당시 외교부 성명은 “정전협정은 조선반도에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빈 종잇장(백지)”에 불과하다고 주장, ‘정전협정은 백지’란 표현이 이때부터 등장했다.

1994년 5월에는 군정위를 대신해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개성에 설치하고 그해 12월에는 중국 군정위 대표단을 철수시켰다. 이어 다음해 2월에는 중감위 폴란드 대표단을 판문점에서 철수시키고서 그해 9월 중감위 사무실을 아예 봉쇄했다.

이는 군정위와 중감위 설립 근거인 정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로, 북한은 이 시기부터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하면서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본격적으로 요구했다.

북한은 1995년 10월 18일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이러한 태도를 계속 취한다면 정전체제를 완전히 청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해 4월 4일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 제1조(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유지와 관리) 이행 의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북한은 그 다음 날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200∼300명의 무장병력을 투입하고 박격포 진지를 구축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켰다.

특히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엄포’는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대북 군사제재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강했다.

북한은 2003년 ‘독수리’ 훈련 등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한 달 앞둔 2월 17일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조선반도 주변에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무력을 집결하고 우리에 대한 제재를 가해온다면 조선인민군은 정전협정의 모든 조항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해 7월 1일에는 미국의 전력증강계획을 비난하는 판문점대표부 대표의 담화를 통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전력증강을 개시하는 경우 미국이 정전협정을 전면 파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즉시 협정의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주권침해에 대해 모든 잠재력을 총동원한 강력하고도 무자비한 보복조치를 단호히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2006년 8월에도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 을지포커스렌즈(UFL) 훈련을 비난하면서 “미국의 이번 전쟁연습을 정전협정의 무효를 선언하는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인민군 측은 앞으로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면 자신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해왔던 북한은 정부가 2009년 5월 26일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자 즉각 그 다음 날 판문점대표부 성명을 통해 “우리 군대는 더 이상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정전협정이 구속력을 잃는다면 법적 견지에서 조선반도는 곧 전쟁상태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며 우리 혁명무력은 그에 따르는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며 서해 상에서 한·미군의 군함과 일반 선박의 “안전항해를 담보할 수 없다”고 위협했다.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휴전과 함께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이 서명했고, 이 협정에 따라 남북 사이에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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