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랜덤채팅앱 산업이 아이들 보호보다 중요한가/김수연 십대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변호사

[기고] 랜덤채팅앱 산업이 아이들 보호보다 중요한가/김수연 십대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변호사

입력 2020-06-08 18:12
업데이트 2020-06-09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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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십대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변호사
김수연 십대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변호사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대중의 공분을 산 지 어느덧 수개월이 지났다. 수사기관은 해당 사건 가해자들을 검거·조사하고 국회는 서둘러 n번방 방지법을 발의해 통과시켰으며 각 행정 부처들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도 디지털 성범죄인 n번방 사건과 유사한 범죄는 종종 발생한다. 소위 ‘랜덤채팅앱’이라 일컫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다. 최근 랜덤채팅앱을 통해 ‘성폭행 상황극’을 위장해 성폭행을 교사하거나 랜덤채팅앱으로 만난 여성을 살해하는 등 엽기적이고 잔혹한 범죄가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랜덤채팅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알선하는 주된 통로로 이용되고 마약 거래, 금융사기 등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거론되면서 규제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방안에 대한 논의는 진전이 없었다. 랜덤채팅앱을 통한 범죄는 증가하는 동시에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는 증거 수집과 가해자 특정이 어렵게 되면서 엄정한 법 집행과 단속은 불가능한 현실이 됐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접근이 용이한 랜덤채팅앱의 특성을 악용한 그루밍과 성착취는 n번방과 같은 경악할 사건을 만들어 낼 정도다.

일부에서는 채팅앱 자체는 ‘유해성’에 문제가 없으므로 그에 대한 규제는 과도한 제재라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업계는 안전한 채팅을 위한 기술적 조치에 부담을 느끼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매체 환경의 변화와 기술 발달로 플랫폼 사업자의 서비스 유형과 특성이 이용자의 콘텐츠를 규정하는 시대가 됐다. 랜덤채팅앱의 익명성, 대화 내용의 휘발성, 신고를 막아 놓은 특성들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 등 불건전한 이용 행태와 콘텐츠 생성을 유도한다면 당연히 유해하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아이들만이라도 안전한 환경에서 대화서비스를 제공받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난달 여성가족부는 휴대전화 인증 등 최소한의 청소년 보호 장치도 구축하지 않은 랜덤채팅앱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고시안을 행정예고했다. 랜덤채팅앱과 이를 유통하는 사업자의 자율적인 운영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동·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은 결과적으로 관련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향후에도 랜덤채팅앱 또는 이와 유사한 플랫폼을 이용해 발생하는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책이 조속히 시행돼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가 근절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06-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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