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청년노동인권] 1020 부당근로 더 늘어… ‘티슈인턴’·‘부장인턴’ 오늘도 운다

입력 : ㅣ 수정 : 2016-07-2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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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알바생·인턴들의 현실
대한민국 사회의 ‘열정 페이’ 관행은 여전하다. 청년 구직난을 등에 업고 휴지처럼 뽑아 쓰고 버린다는 ‘티슈인턴’, 오랜 시간 인턴 경력만 쌓은 ‘부장인턴’이란 씁쓸한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우리 사회의 청년 노동실태를 짚어 보고 해외 사례와 국내전문가 등을 통해 청년 노동인권 보호 방안을 3회에 걸쳐 찾아본다.

만성 구직난에 시달리는 우리 취업 시장에서 그 누구도 청년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 신경 써 주지 않는다. 26일 서울의 한 대학 게시판에 붙은 구인 공고를 여학생이 유심히 보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만성 구직난에 시달리는 우리 취업 시장에서 그 누구도 청년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 신경 써 주지 않는다. 26일 서울의 한 대학 게시판에 붙은 구인 공고를 여학생이 유심히 보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법대로 하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냐. 말단은 회사랑 한 몸인 것처럼 일이나 해.”

서울 금천구의 한 정보기술(IT) 회사 인턴인 김인숙(21·여·가명)씨에게 회사 대표 황모(50)씨가 퉁명스러운 답을 던졌다. 어렵게 최저임금 이야기를 꺼낸 직후였다. 김씨가 근무 3개월 동안 받은 급여는 매월 96만 7000원, 최저임금(월 126만원)에 훨씬 못 미쳤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권리를 요구했지만 대표는 당당했고, 오히려 김씨를 다그쳤다.

하루 근로시간으로 정해진 8시간을 넘겨 일하는 날도 빈번했다. 대표가 꼭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에 일감을 줬기 때문이다.

연장근로수당은 4시간을 추가로 일하면 3000원을 줬다. 원래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해야 하지만 대표는 막무가내였다. 대표의 말은 곧 법이었고, 법은 곧 대표의 말이었다. “연장근무를 하는 건 네가 일을 못해서 그렇다”는 대표의 폭언도 수시로 들었다.

김씨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주위 동료의 태도였다. 한 상사는 김씨가 문제제기를 하자 “어느 회사에 다녀도 다 똑같다. 연장근로수당을 안 주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이러냐”며 핀잔을 줬다. 김씨를 회사에 추천해 준 학교 교수 역시 “네가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런 식으로 하면 다른 회사에 지원해도 떨어질 게 뻔하다”며 압박감을 줬다. 그러다 보니 김씨도 위축됐고,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3개월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 다닐 때도 근로계약서의 중요성을 비롯해 주휴수당, 연장근로수당, 야근수당 등에 대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하루빨리 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져 피해를 보는 열정페이 노동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 2014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직원 월급내역’(견습 10만원, 인턴 30만원 등)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열정페이’ 논란이 일었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오히려 중·고등학생 ‘10대 노동’의 문제점이 인턴, 대학 산학협력 현장실습 등 ‘학생-노동자’ 신분 중간의 20대 청년들에게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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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동권익센터의 올해 ‘상반기’(1~6월) 연령대별 상담 건수를 보면 20대는 모두 80명이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15년 한 해 상담자 수인 98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혜수 법률상담팀장은 “통계의 표본 수는 적지만 올해 20대 상담자가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황대윤 청소년근로권익센터 과장도 “보통 여름·겨울 방학기간에 20대의 부당인턴(대학 현장실습+인턴) 상담 건수가 전월 대비 50~60%씩 급증한다”고 밝혔다.

올 초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현장실습생’ 보호 운영지침을 새롭게 내놨다.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는 인턴들과 달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학 현장 실습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고용부는 지난 2월 ‘열정페이’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주 40시간 근로, 연장·야간근로 금지 등의 내용을 명시했고, 교육부도 비슷한 내용의 운영규정을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운영규정은 일단 최저기준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고, 권고 수준이라 강제성이 없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중·고등학생 ‘10대 노동’의 문제점도 통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5월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알바권리상담센터’가 청년 아르바이트생 500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올해 최저임금인 6030원보다 적게 받은 응답자는 20.8%였다. 특히 10대는 31.9%로 나타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불이익을 받았을 때 반드시 필요한 근로계약서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적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에서 지난해 11월 실시한 ‘근로계약서 작성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대 알바생 중 52.5%는 근로계약서 작성 의무화 규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익을 당했을 경우 신고를 통해 권리를 찾는 일도 많지 않았다. 고용부의 지난 5년간 ‘연소자(18세 미만) 신고사건 처리건수’를 보면 ▲2011년 1737건 ▲2012년 1597건 ▲2013년 1718건 ▲2014년 1690건 ▲2015년 1593건으로 전체 사건 처리의 0.46~0.57%에 불과했다.

송효원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10대, 20대 친구들이 어린 나이에 진정·고소를 하는 건 업계에서 찍힐 수 있다는 두려운 마음에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2016-07-2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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