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등 영입해 콘텐츠 제작·미디어 보유 ‘방송사급 파워’… “中자본 본진 잠식” 우려도

지난달 SBS에서 방영된 2부작 드라마 ‘설련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지진희, 이지아, 안재현, 서지혜 등 주조연급 출연 배우들이 모두 이 드라마의 제작사인 HB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근 매니지먼트사들이 배우 비즈니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 제작 및 채널 확보 등 미디어에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중국 자본이 몰려들고 코스닥에 상장하는 엔터테인먼트사가 증가하는 등 ‘공룡’ 엔터사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자사가 보유한 막강한 연예인들을 바탕으로 작가와 PD를 영입해 드라마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연예계 지형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배우 김윤석, 유해진, 주원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인 심엔터테인먼트가 까다로운 코스닥 상장을 한번에 통과한 데는 이 회사가 제작한 수애, 주지훈 주연의 SBS 드라마 ‘가면’의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주원 주연의 영화 ‘그놈이다’를 제작하기도 한 심엔터는 내년에 ‘찌질의 역사’ 외 영화 2편, MBC 에브리원의 ‘툰드라쇼2’ 외 드라마 2편을 더 제작할 예정이다. 배우 배용준이 대표로 있는 키이스트 역시 자회사인 콘텐츠K를 통해 지난해 SBS ‘신의 선물’에 이어 올해 MBC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를 제작했다.

●아이돌 기획사 몸집 불리기 가시화

인기 아이돌 그룹으로 현금 자산이 풍부한 가요 기획사의 몸집 불리기는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FT아일랜드, 씨엔블루의 가요기획사로 출발해 배우는 물론 유재석, 노홍철 등 개그맨을 대거 영입해 종합 엔터테인먼트사로 거듭나고 있는 FNC엔터테인먼트는 최근 ‘파리의 연인’, ‘온에어’ ‘시크릿 가든’ 등 히트 드라마를 제작한 신우철 PD를 영입했다. 올해 KBS 단막극 ‘고맙다, 아들아’와 16부작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를 제작한 FNC는 향후 스타 PD를 더 영입할 계획을 밝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에 뛰어들 것임을 시사했다. 가수 아이유가 소속된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이광수 등이 소속된 킹콩엔터테인먼트, 정은지가 소속된 걸그룹 에이핑크가 있는 에이큐브를 줄줄이 인수한 것도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SM, 일찌감치 콘텐츠 제작 진출

일찌감치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 가요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자회사인 SM C&C를 통해 현재 방영 중인 KBS 수목 미니시리즈 ‘객주-장사의 신’과 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JTBC 재난 드라마 ‘디데이’를 제작한 데 이어 중국 아이돌 그룹을 육성하는 한·중 합작 예능 프로그램 ‘타올라라 소년’을 통해 중국 예능 제작 진출의 시동을 걸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KBS에서 영입한 이예지 PD가 제작에 참여했다. SM은 올해 스포츠 마케팅 회사 IB스포츠를 인수하면서 IB스포츠 채널까지 자회사로 거느리게 됐다. 드라마 제작뿐만 아니라 김우빈, 장혁의 소속사로 유명한 IHQ는 가요기획사 큐브엔터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데 이어 CU미디어와 합병하면서 큐브TV, 코미디TV 등 IHQ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제 엔터사들은 배우뿐만 아니라 작가와 PD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미디어까지 보유하면서 방송사와 대등해질 정도로 힘이 막강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중국 자본의 유입은 공룡 엔터사들을 탄생시키는 이유다. KBS ‘프로듀사’, tvN ‘오 나의 귀신님’ 등 드라마와 SBS ‘K팝 스타’ 등을 만든 제작사 초록뱀 미디어는 지난달 초 유상 증자로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회사 DMG 그룹을 통해 250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데 이어 김종학 프로덕션과 예능 제작사 등이 소속된 국내 SH엔터테인먼트 그룹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대형 엔터사가 된 초록뱀은 내년에 콘텐츠 제작은 물론 화장품, 패션, 외식 사업 등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한편 FNC는 중국 최대 민영기업인 쑤닝 유니버설 미디어로부터 3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로엔도 지난 10일 중국 인터넷 미디어 기업 ‘르티비’(Letv)와 손잡고 중국 합작 법인을 설립해 한·중 아티스트의 중국 에이전시 사업, 콘텐츠 투자 등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안정적 수입원” vs “보여 주기 경계”

이처럼 엔터사들이 드라마, 영화, OST 등 제작 및 관련 산업을 통해 공룡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안정한 연예계에서 콘텐츠 중심의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지만 주가 관리 차원의 보여 주기식 사업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동아방송대 엔터테인먼트 경영학과 심희철 교수는 “중국 자본이 국내 엔터 기업 본진까지 파고들고 있는데 엔터사들이 매출 규모와 이익만을 쫓아 무리하게 문어발식 사업을 확장할 경우 향후 국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안방을 고스란히 내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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