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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하는 대한민국] (3) 불특정 다수 겨냥 ‘묻지마’ 범죄

[욱~ 하는 대한민국] (3) 불특정 다수 겨냥 ‘묻지마’ 범죄

오세진 기자
입력 2015-03-04 00:26
업데이트 2015-03-04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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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400명… 기분 나빠서, 그냥 아무나 죽인다

#1 지난 1월 1일 오전 4시쯤, 경기 부천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라모(33·지적장애 3급)씨는 주점 문을 닫고 귀가하던 권모(50·여)씨 뒤를 조용히 밟았다. 라씨는 몰래 다가가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권씨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경찰은 라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라씨는 “기분 나쁜 일이 있어 막걸리를 한 병 먹은 뒤 아무나 죽이겠다고 마음먹고 (흉기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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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난달 1일 오전 9시쯤, 경기 안양의 한 식당. 한모(67·무직)씨는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A(55·여)씨를 흉기로 찌르고, 근처에 있던 B(61)씨를 깨물었다. A씨는 폐 아래 부분을 찔려 중태에 빠졌고, 경찰은 한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조사 결과 한씨는 식당에서 처음 본 피해자들에게 “날 왜 미행하느냐”, “혹시 자식이 보낸 것이냐”는 등의 말을 하며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인을 겨냥한 ‘묻지마 범죄’(우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원한을 품은 특정인이나 치정 관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평소 누적된 불만과 적대감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살인·강도·강간·절도·폭행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묻지마 범죄는 최근 5년간 연평균 21만 4000여건이 발생했다. 그중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묻지마 살인’만 연평균 400여건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묻지마 범죄가 정신장애 또는 환각 상태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회·경제적 이유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이들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직장·학교·가정의 인간관계 혹은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원인이 되는 직접 대상이 아닌 제3자에게 분풀이하는 게 묻지마 범죄”라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경제 양극화로 경쟁에서 낙오되고 계층·세대간 갈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데서 비롯된 분노가 최근 묻지마 범죄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대검찰청이 발간한 ‘묻지마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 경제 빈곤층, 소외계층,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 전력이 있는 이들이 주로 우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배 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저지르는 범죄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겉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도 평소 부모와 연인, 직장 상사 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우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 교수는 “우발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범행을 저질렀을 때 본인에게 더 큰 피해가 올 것인지를 따져본 뒤 별다른 피해가 없을 만한 상대를 대상으로 삼는다”며 “묻지마 범죄가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주로 여성·노인·아이·노숙인 등이 피해자인 까닭”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3월 공익근무요원 이모(22)씨가 서울 서초구의 한 빌라 앞에서 길을 걷던 김모(당시 25·여)씨를 흉기로 찌르고 벽돌로 20여 차례 내려쳐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이씨는 ‘어린아이·여자·노인’ 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회안전망 확충과 함께 내면의 분노가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분노조절 클리닉 등을 통해 묻지마 범죄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우리도 직장이나 지역사회의 상담센터 등을 활용해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2015-03-0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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