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시론] 국립현대미술관장, 비전형 리더십 갖춰야/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장

[시론] 국립현대미술관장, 비전형 리더십 갖춰야/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장

입력 2014-12-23 00:00
업데이트 2014-12-23 00:4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요즘 미술계의 핫이슈는 차기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다. 미술계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은 데다 정형민 관장이 직위 해제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미술인들의 관심이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사비나미술관장
그러나 폭발적인 세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수장이 될 자격을 갖춘 유능한 관장을 뽑는 일이 이번에도 결코 쉽지 않겠다는 우려가 따른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우선 과거 문화체육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장 공개 모집 공고문에 실린 관장의 주요 업무에는 국가대표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립 취지 및 목표, 실천 과제, 향후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실린 관장 인사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하며 국민 여러분께 한층 가까이 다가가면서 문화가 있는 행복한 삶을 드리고자 합니다. (…) 복합예술, 과학, 인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이 현대미술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의 산실로 거듭날 것입니다.’

미술관의 존재 목적과 경영이념이 담긴 설립 취지를 명문화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증거물이다. 설립 취지는 미술관을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구심점이 될 뿐만 아니라 미술관 직원들을 확고한 단합의 정신으로 뭉치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술관의 설립 목표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은 한국과 달리 선진문화국의 국립미술관은 설립 목표와 핵심 과제를 국민들에게 명확히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관이라는 설립 취지를 개관부터 지금껏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 런던의 관광 명소인 트라팔가 광장에 국립미술관이 위치한 것도, 무료 관람 원칙을 굳게 지켜 오고 있는 것도 예술품에 대한 취미를 대중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셔널 갤러리는 아이들의 입장을 허락한 최초의 미술관이기도 한데, 이는 육아 도우미를 구하기 어려운 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중친화적 미술관이라는 정체성을 보여 주듯 다른 미술관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1998년 이미 모든 소장품을 데이터 베이스화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프랑스의 국립미술관인 루브르 미술관은 프랑스혁명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설립 취지에 담아 미술관 조직과 업무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루브르 미술관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즐길 수 있는 미적 안목을 길러 주고 민주적 원칙을 교육시키는 국민들의 평생학교’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야심차게 실천하고 있다.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고전미술품 수집과 보존에 두고 있는 것도 고대에서 근대까지 이르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시대별·사조별로 종합적이고도 완벽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작품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카탈로그를 출간한 것도 고전미술사를 완벽하게 공부할 수 있는 국민의 궁전으로 만들겠다는 핵심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루브르 미술관은 수십만 점에 이르는 고전미술품을 소장하는 세계 최대 미술관이며 미술 교과서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고유의 철학이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명확히 전달되지 못해 국민적인 공감을 얻지 못하는 현실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어떤 인물이 국가대표 미술관의 새로운 관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는지 밝혀졌다. 관장은 무엇보다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립 취지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명문화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국립미술관이 나아갈 방향과 지향해야 할 비전을 확실히 제시하고, 이를 소신과 열정으로 실천하는 비전형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
2014-12-23 31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