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언, 이진아, 김필….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은 이들의 공통점은 홍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출신이라는 것이다. 방송 한번 안 타고 작은 카페에서 공연해 온 이들이지만 ‘자랑’(곽진언), ‘시간아 천천히’(이진아) 등의 자작곡은 쟁쟁한 기성 가수들을 제치고 음원 사이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도 홍대를 비롯한 인디 음악계에는 비정규직 못지않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는 가요계의 ‘장그래’들이 많다. 반면 대형 기획사들의 영향력은 해가 갈수록 커지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홍대에서 조용히 활동하던 곽진언은 엠넷 ‘슈퍼스타K6’ 우승으로 빛을 볼 수 있었다. 반면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들은 데뷔 전부터 소속사의 마케팅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치른다. 신인 가수들의 행보도 소속사에 따라 ‘양극화’되는 셈이다.
요즘 가요계에는 소속사에 따라 ‘출신 성분’이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대형 기획사 및 음원 유통사 소속은 재벌 또는 대기업, 군소 기획사 출신은 중소기업, 홍대 인디신의 뮤지션은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들은 데뷔 전 연습생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고, 이는 팬덤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대형 가요 기획사들의 연습생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엠넷과 손잡고 자사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 ‘윈:후이즈 넥스트’를 방송해 신인 그룹 ‘위너’를 데뷔시켰다. 올해도 ‘윈’에서 탈락한 팀과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YG의 새 보이 그룹을 뽑기 위한 엠넷 ‘믹스 앤 매치’를 방송했다. 여기서 탄생한 ‘아이콘’은 데뷔 전이지만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만만치 않은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10일 방송되는 엠넷 ‘노머시’ 역시 씨스타, 케이윌 등이 소속된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자사 연습생들 중 신인 보이 그룹을 뽑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TV를 통해 신인 그룹의 데뷔 전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이미 성공한 가요계의 마케팅 공식이다. 걸그룹 원더걸스, 에이핑크 등도 데뷔 전 비슷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하지만 데뷔 전 연습생 시절부터 노출될 수 있는 기회는 일부 대형 기획사에 한정돼 있다. 한 보이 그룹을 키우고 있는 중소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작은 기획사들은 회당 200만~300만원의 제작비를 대고 데뷔 프로그램을 제안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 소속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열려 있어 신인 때부터 특급 대우를 받는다”면서 “데뷔 전부터 언론을 탄 이들은 데뷔 직후 방송이나 행사 출연료 자체가 다르다. 출발부터 다른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든든한 소속사의 거대 마케팅을 기대할 수 없는 신인 가수들은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진다. 가수 매니저들은 “아이돌의 경우 데뷔 2~3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작은 기획사에서 성공할 확률은 점점 줄고 있다. 거의 운에 기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익성이 나지 않아 외면하는 장르의 음악은 이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 때문에 홍대에서 무료로 공연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학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거나 카페 아르바이트, 공연 엔지니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현재로서는 이들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는 TV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이 전부다. 홍대에서 2년 가까이 활동한 ‘슈퍼스타 K6’ 우승자 곽진언은 “유명 가수의 세션으로 악기를 연주했는데, 많게는 7~8개씩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이애경씨는 “대중은 다양한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지만 현재는 들을 수 있는 창구도 없고 찾아 들을 여유도 없다. 음악의 완성도나 메시지보다는 마케팅으로 음원을 띄워 수입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면 앞으로 가요계에서 다양한 음악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rin@seoul.co.kr
인기기사
인기 클릭
Weekly Best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