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 1일 개막하는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느 해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질 전망이다. 전주영화제 측은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와 리셉션 행사 등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0일까지 열리는 영화제 기간 동안 전 세계 44개국에서 온 영화 181편이 상영된다. 올해는 새로운 기법,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 영화 선택에 갈등하는 영화팬을 위해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상용·김영진·장병원이 영화 7편을 엄선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김영진 프로그래머
●‘철의 꿈’(한국, 박경근 감독)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철의 역사’라는 키워드로 조망한다. 철강, 조선 산업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이룩한 경로는 철에 대한 숭배와 공포라는 이중 잣대로 풀이된다. 두 가지 관점이 한 몸을 이룬 경제성장의 신화를 훑으면서 감독은 근대의 지도 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안 작업 공정을 찍은 이미지들이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다.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어떤 것을 볼까 고민하는 영화팬을 위해 프로그래머가 고른 신선한 영화‘미조’ .<br>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미조’(한국, 남기웅 감독)

입양 부모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만신창이로 살아온 미조는 자신이 버려질 때 있던 피 묻은 유니폼을 갖고 친부모를 찾아 나선다. 갓 태어난 미조를 쓰레기통에 버린 아빠 우상은 여전히 쓰레기처럼 살고 있다. 미조는 우상에게 가장 아픈 복수를 꿈꾼다. 금기의 선을 넘어선 복수라는 테마로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전시하는 이 작품에서 감독은 전작들에 비해 자신의 개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이상용 프로그래머
●‘로크’(영국, 스티븐 나이트 감독)

건설현장 감독 로크는 런던으로 차를 몬다. 자신의 실수를 해결하기 위해 떠난 한밤의 여로를 따라가면서 인간의 책임과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로크가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카메라는 차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 여인, 가족, 직장 동료와의 릴레이 통화를 통해 한 평도 되지 않는 차 안에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의 딜레마가 팽팽한 긴장을 연출한다.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어떤 것을 볼까 고민하는 영화팬을 위해 프로그래머가 고른 신선한 영화‘레옹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강을 내려갈 때’.<br>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레옹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강을 내려갈 때’,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했다’(벨기에, 장-피에르·뤽 다르덴)

21세기 영화 미학의 혁신가인 다르덴 형제의 초기 다큐멘터리. 두 작품 모두 1960년대 벨기에에서 있었던 총파업을 모티프로 삼았다. 각각 레옹 마시, 에드몽 G라는 노동자를 따라 총파업 당시의 상황을 더듬어 간다. 팩트에 대한 기록보다 자유로운 에세이 스타일의 작품으로 다큐멘터리적인 방법론을 근간으로 숙성된 다르덴 영화 미학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장병원 프로그래머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어떤 것을 볼까 고민하는 영화팬을 위해 프로그래머가 고른 신선한 영화‘스틸 라이프’.<br>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스틸 라이프’(영국,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

존 메이는 고독사한 이들의 장례를 대신 치러 주는 공무원이다. 구청에서 존을 해고하기로 결정한 후 그는 빌리 스토크라는 남자의 장례를 마지막으로 맡게 된다. 타인의 죽음을 수습하는 존의 일상은 외롭게 죽음을 맞은 그의 고객들처럼 쓸쓸하다. 외로운 이들의 죽음을 기리는 과업은 단조롭지만 숭고하게 묘사된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영국의 유명 배우 에디 마산이 출연한다.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어떤 것을 볼까 고민하는 영화팬을 위해 프로그래머가 고른 신선한 영화 ‘세컨드 게임’.<br>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제공


●‘세컨드 게임’(루마니아,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

루마니아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이 전직 축구심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1980년대 축구경기를 복기한다. 90분간의 경기를 에누리 없이 보여 주는 이 영화는 차우셰스쿠 독재에 대한 풍자인 동시에 ‘영화’에 관한 논평이다. 영화감독과 축구심판의 상관성과 차이, 축구경기가 펼쳐지는 피치와 스크린의 유사성을 오가면서 흥미진진한 대화가 이어진다. 영화 마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작품.

●‘키페의 여인들’(칠레, 세바스티안 세풀베다 감독)

칠레 산악지대에서 원시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 자매의 이야기. 1974년 피노체트 집권기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이 영화는 독재의 손길이 어떻게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의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감 나게 보여 준다. 알티플라노 고원에서 양과 염소 등을 치며 사는 세 자매는 세상 물정에 밝은 맏언니를 잃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가축 몰살 계획이 발표되자 세 자매는 가축을 팔고 도시로 갈 생각을 하지만 유목민의 삶 외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에게 도시 이주는 그 자체가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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