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이영애가 출연한 2부작 다큐멘터리 ‘이영애의 만찬’(위)이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한식을 소개하는 다큐였지만 대중의 관심은 그녀가 쌍둥이 자녀, 남편과 함께하는 일상에 쏠렸다. 이웃집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아이들의 머리까지 직접 잘라주는 소탈한 모습이 관심을 끈 것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극비 결혼을 한 뒤 보도자료로 그 사실을 밝힐 만큼 신비주의를 고수했던 그녀가 9년 만에 갑자기 가족까지 공개하고 나선 배경에도 덩달아 궁금증이 커졌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지난해 셔틀버스가 오가는 100억원대 호화 저택에 산다는 루머가 불거진 뒤 방송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이미지를 제고해 향후 활동을 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이처럼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며 신비주의를 미덕으로 여겼던 배우들에게 신비주의는 이젠 깨야 할 고정관념으로 변했다. 워낙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데다 아이돌까지 가세한 배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져 과거처럼 신비주의만 고집하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신비주의를 벗는 가장 효과 빠른 방법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 활동이 부진했지만 예능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얻어 재활에 성공한 스타들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최근 KBS ‘1박 2일’ 시즌 3에 출연 중인 배우 김주혁(아래)이다. 그는 영화 ‘투혼’ ‘커플즈’, MBC 드라마 ‘무신’과 ‘구암 허준’ 등의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아 침체기를 보냈지만 ‘1박 2일’에서 기계치에 가까운 ‘국민 허당 형’이라는 반전 이미지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소속사인 나무엑터스 관계자는 “그동안 드라마 등에서 다소 무거운 이미지를 보였는데 예능에 출연해 인지도와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물론 다양한 역할의 작품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MBC ‘진짜 사나이’에서 ‘긍정왕’이라는 캐릭터를 얻은 류수영이 배우로서의 호감도가 상승하며 미니시리즈 ‘투윅스’에 캐스팅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배우 이서진도 연인 김정은과 결별한 뒤 복귀작인 MBC 드라마 ‘계백’(2011)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등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성실한 짐꾼 캐릭터로 대박을 터뜨리며 배우로서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오는 22일 처음 방송되는 KBS 주말연속극 ‘참 좋은 시절’에서 남자 주인공 강동석 역을 맡았다. 이 밖에도 지난해 영화 ‘밤의 여왕’의 성적이 다소 저조했지만 OCN 드라마 ‘텐데이즈 어고’(가제)로 활동 재개를 발표한 배우 천정명도 MBC ‘진짜 사나이’의 새 멤버로 합류하며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자신감도 회복하겠다는 각오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자들도 배우들의 이런 움직임을 반기는 입장이다. 관찰 예능이 대세인 요즘 분위기에서 배우들의 반전 이미지는 캐릭터를 구축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고 연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관찰 예능에 적합하고 표정 변화나 순발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의 한 간부는 “과거처럼 작품 이미지로 연명해서는 인지도가 금세 떨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배우가 자신을 알리고 이슈화하는 능력도 중요해졌다”면서 “하지만 대중은 작품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의 실제 모습에 반응하는 것이므로 이를 너무 소모하는 것은 결국 배우 활동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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