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미래 노후 모델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미래 노후 모델

입력 2014-01-03 00:00
업데이트 2014-01-03 02:23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경륜과 지혜는 사회적 富… 나이 먹었다고 기죽지 마세요”

50, 60대는 100세 시대를 맞는 첫 세대로서 20~30년의 오랜 은퇴 후 삶을 살아야 한다. 수명 연장으로 제3의 인생이 주어진 것은 축복이지만, 긴 여생은 처음 맞닥뜨리는 일로 새로운 숙제이기도 하다. 베이비 붐 세대로서 줄곧 희망과 긍정의 철학을 전파해 온 차동엽 신부로부터 직장에서 퇴직한 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견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두 차례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30일 명동 로열호텔 커피숍에서 오전 10시부터 1시간 남짓 만난 뒤 미진한 것이 있어, 12월 27일 오전 10시 경기 김포시 고촌읍 풍곡리 미래사목연구소에서 1시간가량 더 시간을 가졌다.

이미지 확대
차동엽 신부가 지난달 27일 경기 김포시 고촌읍 풍곡리 미래사목연구소에서 베이비 부머의 제3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베이비 부머에겐 새로운 삶의 모델을 개척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지만 역동적 삶을 살아온 만큼, 그들은 곧 새로운 롤 모델을 찾아낼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차동엽 신부가 지난달 27일 경기 김포시 고촌읍 풍곡리 미래사목연구소에서 베이비 부머의 제3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베이비 부머에겐 새로운 삶의 모델을 개척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지만 역동적 삶을 살아온 만큼, 그들은 곧 새로운 롤 모델을 찾아낼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베이비 부머는 흔히 ‘낀 세대’라고 합니다.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베이비 부머가 살아온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베이비 부머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60, 1970년대는 암울하고 모든 것이 급격히 바뀌는 격동의 시대였지만 한편으론 바닥이 없었던 희망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좌절을 몰랐던 희망에 부푼 시대였습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정신은 건강했던 시대이기도 했고,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했으니 행복한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차동엽 신부도 베이비 부머 세대다. 1958년 생이니 이른바 ‘58 개띠‘다. 중학교 시절 생계를 돕기 위해 봉천동에서 연탄 배달을 하기도 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뒤늦게 신부가 됐다.) 베이비 부머는 자식, 부모를 챙기고 본인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리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또 새로운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베이비 부머를 포함, 우리 사회 전체가 그동안 너무 성공이나 성장, 물질의 이데올로기에 중독돼 살아오지 않았나요.

-행복과 성공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성공을 추구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한 게 아니고, 반대로 행복만 추구한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공에 경도돼 성공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공, 출세에 매달리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규정해야 합니다. 인생의 단계마다 행복은 다를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성취하는 게 행복입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정리하는 세대입니다. 즉 있는 재산, 시간, 해 오던 일에서 깊이를 느끼며 누려야 합니다. 성취보다 여가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살 만큼 살아왔으니 50, 60대는 분명 권태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단계를 넘어서면 새로운 경지가 열릴 것입니다. 옛날보다 강도가 덜하고 에너지가 덜 소모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과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베이비 부머는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는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유럽 등 고령화 사회를 먼저 거친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입니다. 정보화, 디지털화로 요즘 웬만한 정책은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이 때문에 국가 간 정책의 호환도 가능합니다. 공직사회가 선행 사례를 치밀하게 연구해 완성도 높은 정책을 내놓아 제도 시행에 따른 낭비 요소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노인 일자리가 체계화돼 있습니다. 도로, 환경,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 노인들이 띠를 두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50, 60대는 삶의 경륜으로 존경받았는데 요즘에는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독일과 일본, 유대인은 장인을 대접하고 우대하는 사회입니다. 얼마 전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유럽을 다녀온 뒤 5~6선 의원이 장관 후보가 돼야 한다고 말한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치도 장인 경지에 이르러야 실수가 없습니다. 고령화를 재산, 자산으로 삼는 지혜를 가져야지 노인들이 왜 설치냐고 해선 안 됩니다. 원로가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경험 있는 사람들의 경륜과 지혜는 사회적 부(富)입니다. 이런 것이 어우러질 때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나이를 먹어도 기가 죽지 않아야 합니다.

→장인사회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독일에서는 장인이 은퇴하면 적은 월급을 받고 자문, 고문을 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노후복지 시스템이 완비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인제도는 은퇴한 이후 새로운 직업교육을 받지 않아도 돼 훨씬 안정적이고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듭니다. 지혜가 축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한국은 한 분야에서 그만두면 새로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장인 시스템이 작동해 은퇴에서 오는 충격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선진화는 고령인구의 장인성을 평가하는 사회입니다.

→경험 있는 사람들의 경륜과 지혜가 사회적 부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것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장·노년층의 채용을 꺼리는데 이런 장벽을 타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 2%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갖출 것은 다 갖췄는데 뭔가가 빠져 있어 허전합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단사리(斷捨離)에 눈길이 갑니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것을 끊고 버리고 이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회의 주역이고 엘리트라는 인식을 벗어던지고 봉사하고 서비스하는 삶을 살도록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50, 60대가 과거의 지위나 직책에서 벗어나 급여보다 보람에서 만족을 느끼며 봉사하면 직장에서도 베테랑을 반값으로 고용할 수 있으니 효율이 향상될 것입니다. 50, 60대는 효율성 측면에선 떨어지지만 저임금에 고급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수요가 있을 것입니다.

→2%가 부족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는 정신과 물질의 부조화를 겪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다 갖췄는데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압축, 고도성장하면서 큰 틀에서는 따라가고 비슷해졌지만 사회 그물망 형성 등 섬세함에서는 약합니다. 보듬고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50, 60대가 기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 바퀴를 잘 굴려야 합니다. 우선 자기가 가진 지혜를 극대화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장년이 젊은이들처럼 100m 달리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퇴직에서 오는 무력감, 소외감에 대해 비관할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오면서 부닥친 경험을 자산화하고 인생을 갈무리해야 합니다. 사회를 보면 틈새가 있을 것입니다. 50, 60대가 한발 물러서 우리 사회의 구멍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성경 구절에서 보듯 50, 60대는 인생 전반에 대한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나이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사색과 성찰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한편으론 건강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몸이 약하면 위축되는 만큼, 스스로 건강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벌레’라는 별명처럼 평생 일에 매달리며, 성공과 출세 경쟁 속에서 살아온 세대들에게 사색과 성찰하라는 말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50, 60대에게 성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은 갖춰져 있습니다. 은퇴하면 혼자가 되고 외롭고 고독해지지 않습니까.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살아오면서 한번쯤 가졌음 직한 질문 ‘나는 왜 살지’ ‘도대체 행복이 뭐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것에 대해 10, 20대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복습해 보세요. 그때의 해답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하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10, 20대 때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 보면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듯이 그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삶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게 되고 궤도도 수정하게 될 것입니다. 출세, 가족 부양에서 자아 구현으로 자기를 찾아가야 합니다. 인간에겐 생존 본능과 함께 생존 능력이 있습니다. 50, 60대가 퇴직에서 오는 우울증, 무력감에 매몰될 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 새로운 삶의 모델을 개척해야 합니다. 베이비 부머는 역동적 삶을 살아온 만큼, 사색과 성찰의 길에서도 곧 해법을 찾을 것입니다. 필리핀에 ‘하고 싶은 일은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은 핑계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베이비 부머들은 곧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stslim@seoul.co.kr
2014-01-03 24면

많이 본 뉴스

22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선거 뒤 국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 가져야 할 사안은 무엇일까요.
경기 활성화
복지정책 강화
사회 갈등 완화
의료 공백 해결
정치 개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