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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라 쓰고 출근이라 운다… 샐러리맨 연말

연차라 쓰고 출근이라 운다… 샐러리맨 연말

입력 2013-12-27 00:00
업데이트 2013-12-2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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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8년차 직장인 박모(33)씨는 지난주 연차휴가 사용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연차를 쓰기로 한 날 그의 발길은 회사로 향했다. 연차 사용일수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회사 방침과 밀린 업무 때문에 형식적으로 계획서만 제출한 셈이다. 박씨가 올해 연차 20일 중 실질적으로 사용한 연차는 여름휴가를 포함한 8일에 불과했다.

한 해가 마무리되면서 연차를 소진하지 못한 직장인들의 고민이 또 되풀이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1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매년 15일 이상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휴가를 모두 사용하는 직장인은 거의 드물다.

회사는 연차를 다 쓰지 않은 근로자에게 유급휴가 미사용 수당을 지급해야 하지만, 직장인 대부분은 수당 대신 연차를 모두 소진할 것을 강요받는다. 연차 사용일수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회사들도 많다.

연차 미사용분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는 데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연차 계획서를 쓰도록 강요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는 지난 24일 비정규직 직장인이 연차계획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사가 퇴근을 막았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맡은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연차사용 계획서를 제출해 놓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근한다. 대기업 인사팀장은 26일 “외형적으로 연차사용 비율이 100%에 이르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70%, 관리자는 40~50%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인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어서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과장급 문모(36)씨는 “회사가 연차를 다 쓰라고 하지만 내가 맡은 업무의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가를 포기할 때가 많다”면서 “직원 대부분이 이렇게 해 왔기 때문에 마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됐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이어 “회사 업무로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 못할 때에는 다음 해에 일부라도 반영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근로자가 휴가임을 알면서도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노무수령 거부 의사 표시’를 한 것으로 간주해 별도의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기업들은 이처럼 근로자의 책임감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법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보다 기존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업무 체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문무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휴가자를 대신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 보니 기존 제도도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라면서 “대체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탄력적인 업무 체계를 갖추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등 연차를 이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3-12-27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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