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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새벽을 열며] 레미제라블과 한국의 현실

[최동호 새벽을 열며] 레미제라블과 한국의 현실

입력 2013-01-31 00:00
업데이트 2013-01-3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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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시인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국의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영화의 관람객이 500만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원본 소설의 판매부수가 20만권을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중학 시절 이 소설의 요약판을 읽고 눈물 흘리며 밤을 보냈던 기억도 새롭다. 그때 무엇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이나 감옥 생활을 하고 출옥한 장발장이 그를 진심으로 환대해준 마리엘 주교의 은촛대를 훔치고 새벽에 도망쳤으나, 주교님이 이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쟁반까지도 선물하여 그를 새 사람으로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는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대중적이기는 하지만 서사구조의 견고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50년 전 프랑스의 사회현실을 바탕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 오늘의 한국에서 왜 이렇게 열광적 환호를 받는 것일까. 대부분 짐작하고 있는 터이지만 이 영화 속의 이야기가 오늘의 한국 현실, 특히 대선 후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의 ‘6월 항쟁’이 실패로 끝나는 상황에 더 공감을 표명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대선에 실패한 야당 지지자들의 열망을 이 영화가 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혁명군이 부르는 노래는 청중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장발장이 운영하던 공장에서 쫓겨나 머리털을 팔고 생니를 뽑아 딸 코제트에게 생활비를 보내던 팡틴이 지옥과 같은 사창가의 창녀로 전락하게 된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었을 것이다. 1%의 귀족을 위해 99%의 민중이 착취당하는 사회 현실은 끝내 민중혁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19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프랑스는 왕당파와 공화파가 대립하여 강압과 혁명의 악순환을 거듭했다. 이 역사적 파동 속에서 초기 왕당파를 지지하다가 열혈 공화파가 된 위고는 ‘단테가 시로 지옥을 보여주었다면 나는 소설로 지옥을 그려내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16년 동안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다. 지배체제를 대변하는 자베르와 장발장의 대립은 바로 그러한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 이유일 것이다.

체제를 옹호하고 이를 집행하는 자베르와 범죄자에서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신흥도시를 위해 헌신하는 장발장과의 대립에서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위고가 선언한 것은 결국 이념의 대립에 앞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가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소신과 느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민중의 승리를 외치는 혁명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선언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프랑스의 사회 현실과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실은 아주 다르다는 점이다.

산업화 초기의 프랑스와 디지털 정보화의 한국은 어떤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컴퓨터에 의해 조작되고 운영하는 시스템 자체의 코드가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레미제라블이 오늘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근원적인 명제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혁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팡틴의 노래는 잔혹한 현실에서도 인간이 지닌 사랑의 꿈을 호소하고, 혁명군의 노래는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민중의 희망을 대변한다. 오늘의 민중은 과거 1980년대나 1990년대의 그것과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틀을 벗어날 때 더 넓은 역사 지평으로 나아갈 것이다. 새로 취임할 대통령은 물론 여야 모두 새 시대를 갈망하는 민중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왕당파와 공화파의 대립과 갈등에 의해 피로 물들여진 프랑스 혁명의 역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준다.

2013-01-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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