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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칼럼] 인터넷 논객과 신문 논객의 차이/정인학 언론인

[객원칼럼] 인터넷 논객과 신문 논객의 차이/정인학 언론인

입력 2009-11-10 12:00
업데이트 2009-11-1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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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3만가지의 직업이 있다고 한다. 저마다 일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세상을 보는 관점도 제각각이고, 문제를 푸는 방식도 중구난방이다. 사람들은 공동체 생활의 구조적 갈등을 극소화하는 방안으로 언론활동이라는 장치를 찾아내 활용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생각을 수렴하기 위해 정보를 교류하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유도하기 위해 의제설정이라는 수단을 동원했다. 정보의 교류와 확산은 기자활동의 핵심영역이지만 의제 설정에는 논객이라는 오피니언층도 역할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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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학 언론인
정인학 언론인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생산방식이 산업사회를 만들었다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소통수단은 후기 산업사회라는 정보화시대를 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산방식의 첨단화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여기에 덧붙여 공동체 갈등의 효과적인 관리에도 방점이 찍힌다. 산업사회의 신문이라는 매스 미디어에 정보화시대에는 인터넷이라는 획기적인 매체가 가세했다. 인터넷은 퍼나르기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정보를 공유시켰고, 댓글 방식으로 누구나 자기 입장을 세상에 전하게 했다. 홈페이지는 누구나 사회적 쟁점을 자기 관점으로 규정해 확산시킬 수 있는 ‘인터넷 논객시대’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세상 일에 저마다 하고픈 말 한마디가 어찌 없겠는가. 대학 진학률이 세계에서 두번째인 미국의 68%를 압도하는 83%에 이르는 우리 사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말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입장을 먼저 들어보겠다는 침묵의 겸양지덕을 아는 까닭일 것이다. 인터넷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사회적 문제가 부각되면 순식간에 달아 올라 세상을 자극하고 부추긴다. 문제는 그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바로 그 몇몇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쟁점이 무엇인지 각자가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고 입장을 매만질 여유를 주지 않는다.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인터넷 토론마당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농단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인터넷 시대는 결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다. 고대 문명을 싹 틔운 소크라테스 시대에 벌써 인터넷 시대를 잘도 겪었다. 인구 2만명의 아테네에는 인터넷 대신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가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아테네에는 세상을 자극하고 부추기기를 업(業)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활개를 쳤다. 일부는 아크로폴리스로 몰려가 특유의 궤변으로 공동의 관심사항을 사회적 소용돌이로 둔갑시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했다. 또 다른 일부는 아고라에 똬리를 틀고 앉아 포퓰리즘을 증폭시키며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려 획책했다. 소피스트들의 횡행은 포퓰리즘을 조장했고 포퓰리즘은 우민통치로 이어지면서 아테네를 몰락시켰다.

미국에서 표현의 권리를 강하게 외치는 그들은 엉뚱하게도 포르노업자라고 한다. 인터넷의 뒤안길에 똬리를 튼 짙은 그림자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대낮을 활보하는 사람과 어두운 밤길의 걸음걸이는 다르다. 밤길 걸음걸이에 편승하여 공동체의 건전성과 생산성을 경색시키는 행태를 직시해야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의 눈을 맑게 해야 한다. 침묵의 겸양지덕과 달변의 궤변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나가야 할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집단적인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표현의 권리와 포르노의 이중구조를 곱씹어 볼 일이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를 나누어 추려 볼 일이다.

정인학 언론인
2009-11-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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