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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탐방] 국회 속기사들의 세계

[주말탐방] 국회 속기사들의 세계

오일만 기자
입력 2006-11-11 00:00
업데이트 2006-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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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국회 속기사는 70명… 편집·심의관 포함땐 115명. 여성 90%가 허리·목 디스크 등 ‘견경완 증후군´ 앓아.

두명이 기록한 회의록 비교, 다를 땐 녹화물 보고 교정. 1분에 320자 치는 건 기본…

1966년 국회오물투척사건땐 오물 뒤집어쓰기도. 지금은 재떨이도 사라지고 명패는 붙박이로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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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의 기록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회의 기록을 책임진 국회 속기사들의 ‘좌우명’이다.

지난 10월12일 국회 본회의는 난장판이 됐다.10월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따른 긴급 현안을 다루기 위해 본회의가 소집됐으나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판 대결에 돌입한 것이다.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개의를 선언한 임채정 의장은 “어느 한 당의 의원총회 때문에 1시간씩이나 회의가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야당의 ‘무례’를 지적하자 야당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누가 지금 뭐라고 그러는 거야.”,“언제는 시간을 지켰나.”,“의장은 체통을 지켜야지.”라는 등 야당 의원들의 고함소리가 빗발쳤다. 이를 무시한 임 의장이 “북한 핵실험에 관한 긴급 현안 질문을 상정합니다.”라는 발언과 동시에 의석 곳곳에서 “의장 사과하세요.”,“퇴장해 퇴장해.”라는 고함소리에 장내 소란은 계속됐다. 오후 3시3분에 시작된 신경전은 4분 후인 3시7분 열린우리당 배기선 의원이 질의를 시작하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그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은 이렇게 속기록으로 남는다. 당시 본회의가 영원히 ‘역사’로 보존되는 순간이다. 현재 17대 국회에서 실전에 투입되는 속기사들은 모두 70명이고 편집과 기록 심의관 등 관리자까지 합치면 115명이다.9급에서 3급까지 포진돼 있다.

허리·목 디스크로 고생하는 속기사들

본회의 등 중요 회의의 경우 2인1조,25분 간격으로 계속 팀이 교체되면서 속기를 이어간다. 일반 상임위 회의의 경우 보통 한조가 10번 이상 들락거리며 속기록 작업에 참여한다.

이런 작업환경 때문에 속기사들은 주로 디스크 병으로 고생을 한다.23년째 국회 속기사로 근무한 장미경씨는 “여성이 90%인 속기사들은 긴장한 상태에서 기록을 하다 보니 허리와 목 디스크에 많이 걸리고 손목 관절 등에도 무리가 많다.”고 말했다. 의학 전문용어로 ‘견경완 증후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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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록 이후 최종 회의록 작성까지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한다. 손재옥(속기 1과) 서기관은 “완벽한 회의록을 만들기 위해서 두명이 동시에 기록한 회의록을 비교하고 서로 내용이 다르면 영상 녹화물을 꼼꼼히 살펴 교정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영상 녹화물에서도 발음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완벽한 기록을 위해 해당 발언자에게 가서 최종 확인 절차를 밟는다.

현재 국회회의록 문서는 1948년 제헌국회부터 17대까지 국회기록보존소에 1754권(1권 1000쪽 기준)이 비치돼 있다. 본회의와 운영위원회, 예결위, 인사청문회 등 4개 관련 회의는 다음날 문서로 발간, 배포되고 3일후 국회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된다.

국회 속기사들이 가장 애를 먹는 것은 의원들의 부정확한 발음이나 사투리다. 손재옥 서기관은 “의원들이 아무리 빨리 발언을 해도 발음만 좋으면 문제가 없지만 사투리를 사용하거나 얼버무리는 발음이 나오면 기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올 6월부터 모든 소위의 회의기록이 의무화됐기 때문에 업무량이 폭주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요구했던 ‘투명한 의정활동 공개 원칙’이 시행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13명의 속기사를 선발했다.

국회 속기에서도 수기보다는 컴퓨터 사용이 일반화되는 추세다.1948년 제정국회부터는 손으로 쓰는 ‘수필 속기’의 시대였지만 지난 1995년 컴퓨터 속기가 도입됐다. 국회 속기사들은 보통 1분에 320자 정도의 속도를 낸다. 컴퓨터 속기는 한글의 초성과 중성, 종성을 한번에 쳐서 글자를 만드는 원리다.

과거엔 속기록을 일일이 ‘손으로 풀어서’ 회의록으로 복원했지만 지금은 컴퓨터 자동 번역 시스템이 도입됐다. 속기록 카드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자동적으로 한글로 바뀌는 시스템이다.

과거엔 야당 의원의 밤샘 발언에 퇴근도 못해

속기과의 왕고참인 김창진(58) 과장은 37년전인 1969년에 국회에 들어왔다. 국회 속기과의 산증인인 그는 “한국의 의정사는 속기사의 역사”라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발언 제한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1960∼70년대 반독재 투쟁을 선언한 야당은 국회 투쟁의 하나로 합법적인 ‘필리버스터(의사방해) 전략’을 많이 구사했다. 김 과장은 “당시 한 야당의원이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밤새워 발언을 하는 통에 속기사들이 퇴근도 못하고 작업을 한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특히 속기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화는 1966년 국회 오물투척 사건. 당시 야당인 김두한 의원은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은폐하려는 박정희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본회의 도중에 인분을 단상에 투척했다.

그런데 속기사들은 정확한 기록을 위해 단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당시 김 의원이 던진 인분은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는 물론 선배 속기사들이 함께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본회의장 풍속도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70년대 본회의장엔 재떨이가 상시 비치됐는데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다가 재떨이를 던지는 통에 속기사들의 안전을 위협했던 적도 있었다.”며 “후에 재떨이는 안전을 고려해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부터 본회의장에도 금연 문화가 도입됐다.”고 전했다.

의원 명패도 이동식 나무 재질이었으나 여야간 격돌시 ‘무기로 변질’되면서 붙박이 명패로 바뀌었다는 것이 김 과장의 ‘증언’이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국회 속기사 되려면…

속기의 역사는 기원전 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사형을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각 지방으로 유세를 다녔다. 그의 제자 타이론은 로마자를 적당히 약기하는 방법으로 스승의 연설을 받아 적어 각지에 공표했고 이것이 속기법의 효시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속기의 표기 방식은 손으로 쓰는 수필 속기와 컴퓨터 속기 등 두가지이고 구체적인 표기 방식은 고려식과 의회식 등 모두 7가지로 압축된다. 글자의 모양과 형태에 따른 구분이다.

국회 속기사가 되려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한글속기 3급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국회사무처가 시행하는 국가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임용시험은 필기·실기시험과 면접시험으로 나뉜다. 필기 시험 과목은 국어와 영어, 헌법, 행정법총론, 행정학개론 등이며 선발 예정 인원의 2배수 정도를 뽑는다. 필기시험을 통과한 뒤 치르는 실기시험은 연설의 경우 1분당 320자(5분), 논설은 300자(5분)가 최저선이다.

국회속기사 채용은 결원이 있는 경우 매년 12월경에 다음 연도 국가 공무원 임용시험 시행계획을 공고하고 6∼7월경에 시험을 본다.2004년과 2005년에 각각 4명씩을 뽑았으나, 올해에는 업무량 폭주로 13명을 선발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2006-11-1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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