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학대회] ‘남편은 왕’ 인식깨야 가정 평화

[세계여성학대회] ‘남편은 왕’ 인식깨야 가정 평화

이효연 기자
입력 2005-06-22 00:00
업데이트 2005-06-2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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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유엔총회’로 불리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가 지난 19일 이화여대와 연세대, 서강대에서 개막됐다.2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대회에는 79개국에서 여성 대표 2292명이 참가해 세계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토의했다. 한국여성학회와 이화여대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역대 최대 규모이자 아시아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구촌 여성학자와 여성 정치인,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하는 여성 운동가들이 함께 여성의 문제를 털어놓고 고민하는 대회 현장을 찾았다.

21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의 행사중 하나인 가정폭력 피해여성 추모제에서 연기자들이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넋을 달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21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의 행사중 하나인 가정폭력 피해여성 추모제에서 연기자들이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넋을 달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우리나라와 일본은 기혼 여성 6명 중 1명, 필리핀은 5명 중 3명이, 몽골은 3명 중 1명이 남편의 신체적·성적 폭력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10년 동안 남편의 지긋지긋한 폭력에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여성, 손버릇처럼 매질을 일삼았던 아버지를 목졸라 죽인 강릉의 어느 여중생. 남편이고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폭력을 가하는 가부장을 향해 이들이 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살인’이었다. 이런 가정 폭력은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가부장제 문화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는 아시아권 국가의 여성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정 폭력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이틀째인 21일 이화여대에는 아시아 5개국 대표가 가부장제의 최대 ‘악(惡)’인 가정폭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아시아 지역의 가정폭력 추방운동 지역네트워크와 전략 마련을 위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는 일본·중국·필리핀·몽골·한국의 대표들이 각 국가의 가정 폭력 실태를 고발하고 아시아 공동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지 함께 고민했다.

일본의 여성 쉼터인 ‘온나노스페이스 온’의 곤도우 게이코 대표이사는 일본의 충격적인 가정폭력 실태를 공개했다.2002년 일본 경찰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일에 1명 꼴로 남편의 폭력에 의해 아내가 사망하고 있었다. 전체 여성의 0.5%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폭행을 늘 당하면서 살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 몽골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해서 논하는 것조차 금기시 돼 왔다.1990년 이전에는 가정에서 발생한 어떠한 문제라도 모두 ‘건전한 가정’,‘사회주의적인 가정생활규칙’에 따른 당의 이념에 따라 소속기관에서 공개적으로 처벌했다. 이 때문에 가정 폭력에 관해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란투야 푸레브잡 몽골 국민폭력반대센터 쉼터 코디네이터는 “5∼6년 전만 해도 몽골 정부 관계자들은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몽골에 있지도 않은 문제를 외국에서 끌고 들어와 퍼뜨리는 사람들로 몰아세웠다.”며 얼마나 어렵게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몽골의 가정 폭력 실태 역시 심각했다.2003년 몽골 국민폭력방지센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몽골 여성 3명 중 1명, 어린이 2명 중 1명, 노인 4명 중 1명이 남편과 아버지, 아들에게 맞고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폭행 사건도 몽골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성폭행 가해자의 50%는 친족이며 피해자의 60%는 만 18세 미만이었다. 성폭행 가해자가 입건되더라도 88%는 조사 중에 무혐의 처리돼 풀려난다는 조사 결과도 이번 대회에 공개했다.

왕싱쥐안 베이징 홍풍여성심리상담센터 대표도 중국에서 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최근이라고 밝혔다. 그는 “1995년 제4차 세계여성대회가 중국에서 열리기 전에는 중국 정부는 물론 민간 단체들도 가정폭력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1994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한 여성이 상담센터로 전화를 걸어왔지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지난 10년간 가정폭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도록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를 위해 아시아 여성들이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여성 쉼터인 ‘리훅 필리피나’의 테레사 페레난데즈 대표는 “필리핀 여성의 56%가 각종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면서 “가정폭력의 가해자가 어린 시절에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으며 매맞는 여성의 다수가 어린 시절 자신들의 어머니가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등 가정 폭력은 악순환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 5개국 대표들의 심포지엄을 주관한 한국 여성의전화 연합 김은경 공동대표도 아내와 자식을 소유물로 인식하는 가부장제의 문화를 어서 빨리 이 사회가 깨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부장적인 남성일수록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남성은 한 가족의 구성원이지 지배자나 왕으로 군림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바람직한 가족관계를 형성해 가기 위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2005-06-2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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