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자전거를 위하여

[녹색공간] 자전거를 위하여

최성각 기자
입력 2002-08-19 00:00
업데이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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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어김없이 하늘은 적잖은 분들의 농사를 망치고 집을 무너뜨리고,이름 모를 무수한 생명체들을 간단없이 휩쓸고 지나가는 비를 내렸다.한강의 수위는 잠수교를 잠수시킨 뒤에도 며칠간이나 그 높이를 유지했다.

며칠 뒤 비가 좀 멎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가 결국 반포대교 언저리에서 아직 치우지 못한 진흙더미에 빠졌다.헬멧을 쓴 다른 자전거족들은 진행하려는 필자를 만류했다.하지만 필자는 운동하러 자전거를 끌고 나온 게 아니라 일터로 가는 길이었기에 거대한 늪처럼 고여 있는 진흙더미 때문에 돌아설 수 없었다.페달이 진흙속에 잠겼고,운동화가 잠겼고,무릎이 잠겼으며,진흙이 온몸에 튀었다.

필자는 금년 여름부터 잠실에서 서교동까지 한강변을 따라 23㎞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시작했다.차로 스쳐지나가던 한강과 자전거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가는 길은 무척 달랐다.세금도 없고 운전면허도 필요없는 자전거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물 위로 튀어오르는 고기와 자연초지의 갈대밭까지 만나게 해주었다.

필자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여름,환경단체 풀꽃세상에서 ‘자전거'에 풀꽃상을 준 뒤부터였다.‘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기치로 그동안 풀꽃세상은 ‘새,돌,풀,길,조개,꽃,지렁이'에게 사죄의 마음으로 혹은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아무런 대변자도 없이 후기산업사회의 오만한 인간들에게 무차별 능욕을 당하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었다.

이번에 자전거에 풀꽃상을 준 선정 이유는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다.

자전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공간을 난폭하게 대하지 않고,풍경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더러 방귀를 뀌는 개인적인사정 외에는 대기를 오염시킬 일이 전혀 없고,정기적인 대인대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되고,운동부족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떠날 염려가 거의 없는,인류가 만든 공산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입니다.달리다가 문득 한 발은 페달에,한 발은 대지에 굳건히 딛고 서서 지나가는 이웃에게 “밥 먹었니?” 하고 물을 수 있는 자전거는 사람과 사람을 정으로연결시키기까지 합니다.풀꽃세상은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자주 자전거를 타기 바라는 마음에서 제8회 풀꽃상을 '자전거‘에게 드립니다.

단순한 자전거 예찬을 위해서는 아니었다.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 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자동차문명에 대한 비판과 경고가 이번 풀꽃상에 담겨 있었다.

승용차 1대가 달리는 차선 하나면 자전거는 5대가 이용가능하고,승용차 1대의 주차공간을 자전거 12대가 이용할 수 있다.그런데도 우리는 자동차를 위한 시설에는 계속 투자하면서 자전거를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다.서울의 경우 한강변은 그나마 비교적 뛰어난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지만,한강만 벗어났다 하면 자동차로 인해 목숨 내놓고 타야 하니 말이다.

환경부는 자동차 환경부담금을 더 거둬들인다고 하고,기획예산처는 자전거도로를 위한 예산을 줄인다는 소식이 들린다.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는 나라살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을 제외한 이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 나라'를 서울보다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지역'을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최성각/ 소설가, 풀꽃세상 사무처장
2002-08-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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