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1일 도청앞 발포 현지지휘관 결정/김진영씨는 30경비단모임 우발적 참석
12·12및 5·18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8일 하오 사실상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이 자리에는 이본부장을 비롯,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검사 10여명이 모두 참석,번갈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열성을 보였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기소유예한 19명의 선별기준은.
▲범행가담 경위와 뉘우치는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했다.이들은 『군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퇴역군인으로서 여생을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을 기소유예한 이유는.
▲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기소유예했다.육사 1년 선배인 장세동씨가 『3성장군을 비롯,선배들이 오는데 접대할 사람이 없다』고 간곡히 부탁,참석했다는 점을 참작했다.우발적 동기였다.
5·18당시 발포명령을 내린 책임자는 누구인가.
▲명시적 명령은 없었지만 일선 지휘관으로서는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육본지휘부의 「자위권 천명」이 있었다.최고 책임자인 육군참모총장과 배후에서 자위권을 천명토록 한 계엄사 합수부장인 전두환씨다.이들이 명목상의 발포명령 책임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따라서 이들에게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자위권 천명에 앞서 80년 5월21일 하오 1시에 전남도청 앞에서 발포가 있었는데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지 않는가.
▲현지 대대장 등 일선지휘관들의 우발적 판단에 의한 집단발포로 보았다.조직적으로 상부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다.따라서 내란목적살인으로 볼 수 없다.(이종찬 3차장검사가 나서며)부연설명하겠다.언론 등에서는 광주 현지 지휘관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범죄 혐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장 지휘관들을 조사한 결과는.
▲수사검사가 상당히 깊이 파고 들었다.지휘관들을 상대로 『상관들의 지시가 없었다고 대답하면 당신들이 발포책임을 지게 된다』고까지 얘기했다.그러나 『여단장 등의 지시가 있었다면 왜 그 쪽으로 책임을 미루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이른바 「양민학살」에 대한 규명은.
▲광주 현지조사 전에 모두 12곳을 선정했다.그 중 주남마을,송암동 등 4곳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공소가 제기됐다.나머지는 범죄로 단정할 만큼 밝혀지지 않았지만 공소유지와 양형참작에 직·간접적인 자료로 제출할 것이다.
양민학살의 범죄자는 밝혀냈나.
▲가해자 중 한사람은 숨졌고 나머지는 못 밝혀냈다.
네곳의 학살에 대한 책임자는.
▲전두환씨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일선 지휘관들 중 12·12사건 관련자는 기소유예하고 5·18관련자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차이점은.
▲군사반란죄는 목적범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해서도 범죄가 성립한다.그러나 내란죄는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가담했다고는 볼 수 없다.<박은호 기자>
12·12및 5·18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8일 하오 사실상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이 자리에는 이본부장을 비롯,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검사 10여명이 모두 참석,번갈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열성을 보였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기소유예한 19명의 선별기준은.
▲범행가담 경위와 뉘우치는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했다.이들은 『군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퇴역군인으로서 여생을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을 기소유예한 이유는.
▲30경비단 모임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기소유예했다.육사 1년 선배인 장세동씨가 『3성장군을 비롯,선배들이 오는데 접대할 사람이 없다』고 간곡히 부탁,참석했다는 점을 참작했다.우발적 동기였다.
5·18당시 발포명령을 내린 책임자는 누구인가.
▲명시적 명령은 없었지만 일선 지휘관으로서는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육본지휘부의 「자위권 천명」이 있었다.최고 책임자인 육군참모총장과 배후에서 자위권을 천명토록 한 계엄사 합수부장인 전두환씨다.이들이 명목상의 발포명령 책임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따라서 이들에게 내란목적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자위권 천명에 앞서 80년 5월21일 하오 1시에 전남도청 앞에서 발포가 있었는데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지 않는가.
▲현지 대대장 등 일선지휘관들의 우발적 판단에 의한 집단발포로 보았다.조직적으로 상부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다.따라서 내란목적살인으로 볼 수 없다.(이종찬 3차장검사가 나서며)부연설명하겠다.언론 등에서는 광주 현지 지휘관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범죄 혐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장 지휘관들을 조사한 결과는.
▲수사검사가 상당히 깊이 파고 들었다.지휘관들을 상대로 『상관들의 지시가 없었다고 대답하면 당신들이 발포책임을 지게 된다』고까지 얘기했다.그러나 『여단장 등의 지시가 있었다면 왜 그 쪽으로 책임을 미루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이른바 「양민학살」에 대한 규명은.
▲광주 현지조사 전에 모두 12곳을 선정했다.그 중 주남마을,송암동 등 4곳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공소가 제기됐다.나머지는 범죄로 단정할 만큼 밝혀지지 않았지만 공소유지와 양형참작에 직·간접적인 자료로 제출할 것이다.
양민학살의 범죄자는 밝혀냈나.
▲가해자 중 한사람은 숨졌고 나머지는 못 밝혀냈다.
네곳의 학살에 대한 책임자는.
▲전두환씨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일선 지휘관들 중 12·12사건 관련자는 기소유예하고 5·18관련자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차이점은.
▲군사반란죄는 목적범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해서도 범죄가 성립한다.그러나 내란죄는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가담했다고는 볼 수 없다.<박은호 기자>
1996-02-29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