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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장악 티크리트 탈환전 ‘핵심인물’ 술레이마니 장군고교졸업후 이란혁명 가담

IS 장악 티크리트 탈환전 ‘핵심인물’ 술레이마니 장군고교졸업후 이란혁명 가담

입력 2015-03-07 10:59
업데이트 2015-03-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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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장악 티크리트 탈환전 ‘핵심인물’ 술레이마니 장군고교졸업후 이란혁명 가담…혁명수비대 입대 이란-이라크전서 두각

’베일에 가린 지휘관’, ‘어둠의 기사’, ‘미스터 해결사’, ‘냉혈한’, ‘슈퍼마니’, ‘우려와 기대를 함께 가진 테러리스트’, ‘이라크 정권의 마지막 버팀목’.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한 이라크 북부의 전략 요충지 티크리트 탈환을 위한 이라크 정부군의 작전이 일주일째 진행되면서 이란 원정군 총사령관 콰셈 술레이마니 소장에 붙은 온갖 수식어들이다.

워싱턴포스트(WP),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알자지라,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은 술레이마니가 탈환전에 참가한 부하들과 차를 마시고 담소하면서 작전을 지휘하는 사진과 베일에 가린 그의 이력 등을 담은 보도를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이란군 정예 혁명수비대(IRGG) 내에서 특전사령관과 정보사령관을 겸하는 술레이마니는 소셜미디어(SNS)에 자주 등장하면서 일약 유명인사로 부상했다. 그에게 쏠린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대회전 양상을 띠는 이번 티크리트 탈환전의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 가시화한 것은 그가 이끄는 이란 특수부대 ‘쿠드스’(Quds)가 싸움다운 싸움을 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59세인 술레이마니는 평범한 가문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물(水) 처리공장에서 일하다 이란 혁명에 뛰어들었다. 이란 혁명의 정신적 지주인 아야톨라 호메니의 열렬한 지지자인 술레이마니는 혁명수비대에 입대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팔레비 왕정 붕괴에 이은 호메니 정권 출범 직후인 1980년 이란-이라크전쟁 때다. IRRG의 중위로 입대한 그는 이 전쟁에서 남부 전선에 투입된 제41 사랄 사단장으로 벼락출세를 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아프간 접경 군구(軍區)사령관이 된 그는 터키와 유럽으로 향하던 마약 밀매단을 성공적으로 소탕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런 덕택에 그는 1998년 3월 투드스 사령관직에 오르면서 차기 IRGG 사령관 후보로 일약 부상했다.

군인으로써뿐만 아니라 비밀협상의 주역으로도 맹활약했다. 2001년 9. 11 테러 직후 술레이마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미국 외교관에게 아프가니스탄 내 수니파 반군 조직 탈레반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아프간 공격과 탈레반 정권 붕괴,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 인사 제거 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서도 술레이만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국내외의 파상공세에 직면해 정권 붕괴 위기까지 내몰린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부 지원에 나선 술레이만의 쿠드스는 반군이 장악한 주요 거점을 탈환하는 선봉대 역할을 했다.

이라크 전선에서의 맹활약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라크 정부군이 IS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진 것과 달리 쿠드스는 IS가 쳐놓은 북부 아미를리 포위전을 푸는 데 성공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술레이만은 이란 핵무기 개발 계획과 관련해 2007년 유엔이 선포한 결의안 1747호의 제재 인사 명단에 포함됐으며, 2011년 미국에 의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인사와 테러리스트로 지목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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