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스 좀…” 사경 헤맨 50대 집엔 슬픈 ‘삶의 무게’ 500㎏

“주스 좀…” 사경 헤맨 50대 집엔 슬픈 ‘삶의 무게’ 500㎏

입력 2021-09-02 22:22
수정 2021-09-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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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소외 이웃 집 청소 동행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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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천구 A씨의 집이 쓰레기로 뒤덮힌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서울시 양천구 A씨의 집이 쓰레기로 뒤덮힌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바닥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북이 쌓인 소주병과 맥주 캔, 비닐봉지, 엉망인 옷가지…. 이곳은 약 2주일 전 전화 수화기를 통해 “주스 좀…”이란 말을 간신히 내뱉은 뒤 앙상한 모습으로 구조된 50대 남성 A씨가 사는 약 43㎡ 규모의 서울 양천구 임대아파트다. A씨를 최초로 발견했던 신정3동 주민센터와 양천구청의 청소 협력 사회적기업, 신월종합사회복지관 직원 등 12명이 2일 A씨의 집을 말끔히 치웠다. 요양병원에서 치료받는 A씨가 퇴원했을 때 새 출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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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천구 A씨의 주방이 쓰레기로 뒤덮힌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서울시 양천구 A씨의 주방이 쓰레기로 뒤덮힌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오전 9시 30분 집 안에 가득 찬 쓰레기를 밖으로 빼내는 일부터 시작됐다. 집 내부로 들어서니 오래된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섞인 악취가 확 끼쳤다. 화장실은 곰팡이와 배설물이 뒤범벅돼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청소에 나선 직원들은 재활용품부터 분리했다. 설거지도 어려울 듯한 그릇, 냄비 등 주방기기들은 쓰레기 봉지로 직행했다. 냉장고 속에선 상한 반찬들이 발견됐다.
곰팡이와 오물로 더러워진 화장실의 모습.
곰팡이와 오물로 더러워진 화장실의 모습.
1시간 정도 지나자 집 안에 널려 있던 쓰레기들은 얼추 정리됐다. 이후 4명의 청소업체 직원이 5시간에 걸쳐 쓸고, 닦기를 반복했고 오후 3시 30분쯤 코로나19 방역 소독까지 마쳤다. A씨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 무게는 500㎏에 달했다. 100ℓ 재활용 봉지 13개, 50ℓ 종량제 봉투 17개, 유리 등 화학물질을 담는 포대 14자루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쓰레기의 양과 집안 상태를 미뤄 보아 최소 6개월 이상 이런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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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천구 A씨의 집에서 나온 500kg 분량의 쓰레기를 트럭에 실은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서울시 양천구 A씨의 집에서 나온 500kg 분량의 쓰레기를 트럭에 실은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돌봄 활동이 끊기다시피 하면서 혼자 사는 취약계층이 고독사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A씨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신정3동 주민센터 주윤홍 팀장의 끈질긴 전화 덕분이었다. 주 팀장은 지난달 17일 ‘취약계층 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임을 알리려 A씨에게 4통의 전화를 연거푸 걸었다. 열흘 넘게 굶어 스마트폰을 들 기력조차 없었던 A씨는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 내 수신 버튼을 눌렀고 “주스 좀…”이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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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 상황임을 직감한 주 팀장은 돌봄매니저·방문간호사와 함께 A씨의 집으로 향했고,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쓰러진 A씨를 발견했다. 보라매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치료를 마치고 지난달 31일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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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모두 마친 서울시 양천구 A씨의 집이 깨끗해진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청소를 모두 마친 서울시 양천구 A씨의 집이 깨끗해진 모습.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주민센터는 오랜 기간 왕래가 없던 A씨의 가족을 찾아 연결했다. 20년간 알코올중독에 빠져 살아온 탓인지 A씨는 가족들과 점차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임대아파트에 혼자 살기 시작한 것도 20여년 전쯤이다. 이날 A씨의 집 청소를 위해 강원에서 달려온 A씨의 형은 주 팀장에게 “팀장님이 아니었다면 동생은 이미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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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청소된 A씨 집의 화장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깨끗이 청소된 A씨 집의 화장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A씨는 현재 혼자서는 걷기 어려운 상태다. 요양병원에서 한 달 정도 몸을 회복한 후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주 팀장은 “알코올중독 환자는 그대로 두면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A씨가 예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주민센터와 구청은 A씨가 퇴원 후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2021-09-0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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