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자답] 한국에서도 툰베리가 나올 수 있을까

[자문자답] 한국에서도 툰베리가 나올 수 있을까

곽혜진 기자
입력 2019-12-27 14:50
수정 2019-12-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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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부터 정치교육 이뤄져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대응 촉구 집회 중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 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대응 촉구 집회 중 그레타 툰베리의 모습. AFP 연합뉴스
정치교육에 대한 기본 원칙조차 없어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을 주입해선 안 돼
교육도 ‘다양성’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5피트(152cm)의 거인.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9년 올해의 인물로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를 꼽았다. 툰베리는 금요일마다 학교 대신 스웨덴 의회 앞으로 향했다.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지난 8월에는 무동력 보트로 대서양을 건넜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툰베리에게서 영향을 받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기후보호운동에 동참했다. 10대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한국에서도 툰베리 같은 ‘작은 거인’이 나올 수 있을까?

10대가 사회를 이끄는 한 축으로 우뚝 서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힘의 원천은 교육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정치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정치교육이란 학생들에게 좌우 진영 논리를 심는 게 아니다.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핀란드에서 30대 여성 총리가 나오는 등 유럽에서 젊은 정치인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청소년기부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교실에는 정치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조차 없다. 최근 몇몇 학교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그제야 공론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0월 서울 인헌고에서는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한 교사가 반일 구호를 강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9월에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정부의 선전 효과를 노리고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는 발언을 해 직무에서 배제됐다. 어느 학교에서는 시험 문제를 ‘조국 사태’와 관련 지어 출제하는 바람에 재시험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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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부모단체연합,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등 보수 성향 단체 소속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인헌고 교장·교사 규탄 및 인헌고 학생수호연합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전국학부모단체연합,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등 보수 성향 단체 소속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인헌고 교장·교사 규탄 및 인헌고 학생수호연합 지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이처럼 갈등의 골이 깊게 팬 후에야 우리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교육청은 17일 사회 현안에 대한 교육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불참을 선언한 보수 교육계를 제외하고 각 교육계 교사들이 모여 정치교육의 기준을 세웠다. 뼈대는 독일의 바이텔스바흐 협약을 모델로 만들었다. 바이텔스바흐 협약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논쟁적 사안을 논쟁 그 자체로 다루며 정치적 행위를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즉 사회 현안을 다루되 학생들에게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을 주입하는 방식은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보이텔스바흐와 함께 자주 참고되는 정치교육으로 영국의 ‘시티즌십 교육’(시민교육)이 있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영국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방식을 가르치고, 투표 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이 역시 교사의 생각을 주입해선 안 된다는 대전제가 있다. 단정적인 언어뿐만 아니라 표정이나 몸짓으로도 주관적 판단을 드러내선 안 된다. 다만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선 중립적 태도가 더 나쁘다고 본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이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의 결론도 이와 같다. 정치 교육은 중요하지만, 교사의 중립적 태도가 그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그렇다면 이제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하나다. 중립이란 무엇인지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분명 교사가 어떤 것도 판단하지 않거나 양비론적 태도에 머무르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테다. 산술적 중립은 공정성을 핑계로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치교육이란 본디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데 있다. 민주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이 모여 토론을 통해 타협을 이룬다. 때문에 교육도 ‘다양성’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교사는 다양한 가치관과 그 근거를 풍부하게 알려주고, 판단의 몫은 학생에게 맡기면 된다. 일각에서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을 지나치게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시각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민주주의의 열망을 품고 변혁을 이뤄낸 주역들 사이에는 중고생이 있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2016년 국정농단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된 때에도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정치교육에는 ‘작은 거인들’의 생각을 존중하는 어른의 자세도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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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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