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지은이다’ 싸워온 554일…피해자 아닌 시민으로 잘살아가길”

“‘내가 김지은이다’ 싸워온 554일…피해자 아닌 시민으로 잘살아가길”

김정화 기자
입력 2019-09-09 13:52
수정 2019-09-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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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내 일처럼 울고 웃어…가해자 유죄 다행”
“‘위력’ 개념 국민 공감대 형성된 듯…
앞으로 성평등한 조직 문화 기대”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서울신문 DB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서울신문 DB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게 돼 다행입니다. 김지은씨가 이제는 피해자가 아니라 한 명의 시민으로 잘살기를 바라요.”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4) 전 충남지사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6개월형을 확정받은 9일 배복주(48)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내 일처럼 울고 웃은 날이 드디어 끝났다”면서 소회를 밝혔다. 배 대표는 김씨가 지난해 3월 한 언론에 출연해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나서 554일 동안 곁을 지키며 “내가 김지은이다”를 외친 사람 중 한명이다.

배 대표는 “1·2심에 걸쳐 총 4번의 준비기일과 10번의 공판을 거쳤고, 무수히 많은 성명과 자료를 냈는데 결국 가해자에게 유죄가 확정돼서 정말 다행이다”라면서 “강간, 강제추행보다 덜 익숙한 조직 내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씨가 폭로한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행 사건은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 사건과 함께 한국 사회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의 핵심이었다.

배 대표는 1998년 장애여성 단체를 설립하고, 2001년부터 성폭력 상담 업무를 맡아온 베테랑이었지만, 안희정 사건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해자가 대권주자로 거론될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고, 민주주의와 젠더에 대해 얘기하던 사람이었기에 지지자들과 맞서는 게 힘들었다”면서 “다른 성폭력 사건과 달리 모두가 가해자를 알고 편드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게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피해자가 처음 폭로한 뒤부터 계속 사건 담당해 왔다. 변호인단 구성은 물론 법정 출입 동선 등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세세한 부분까지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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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상고심 판결 관련 기자회견 연 여성단체 회원들
안희정 상고심 판결 관련 기자회견 연 여성단체 회원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 관련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안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19.9.9
연합뉴스
1년 6개월간 피해자를 대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1심 무죄 판결이 나왔던 시기다. 배 대표는 “공개로 진행된 1심 공판에서 피고인 측 증인들이 하는 얘기가 실시간으로 생중계 되다시피 해 피해자 부담이 컸고 재판부 심리 역시 폭력적이었다”면서 “이미 대법원에서 ‘위력’이 유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고 행사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전례가 있는데 1심 재판부는 이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너무 상심했지만, 뒤로 주저앉는 대신 ‘어떻게 하면 이길까’를 고민했다”면서 “3명이던 변호인을 9명으로 늘리고, 지지하는 시민단체를 158개로 확대하는 등 규모를 늘려 단단히 대비했다”고 덧붙였다.

재판 과정 내내 이어졌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역시 이들이 감당하기에 벅찼다. 배 대표는 “유죄, 무죄라는 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피해자를 향한 손가락질과 비난, 성적대상화는 계속됐다”면서 “‘수행비서가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간음 당하면서 도망가지 않았다’는 등 피해자를 탓하는 국민 인식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짚었다.

배 대표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다른 성폭력에 비해 ‘위력’이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해 우리도 활동하면서 국민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더뎠던 것 같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신고율이 올라가고, 더 성평등한 조직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를 포함한 안희정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사건과 관련해 백서를 만들고, 토론회 주최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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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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