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르포①/유채색으로 변한 평양과 그 뒷면

평양 르포①/유채색으로 변한 평양과 그 뒷면

최병규 기자
입력 2017-04-13 17:40
수정 2017-04-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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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과 취재단은 지난 2일 서울을 출발해 베이징을 경유, 한국보다 30분 느린 북한시간으로 3일 오후 5시30분에 도착했다. 숙소인 양각도국제호텔까지 가는 길은 평양의 변화를 알려주는 쇼케이스 같았다. 취재진을 태운 버스는 곧 개장할 예정인 ‘고층빌딩 숲’ 려명거리를 시작으로 만수대의사당과 김일성-김정일 동상, 김일성 광장, 개선문 등을 휘저은 뒤 미래과학자 거리의 화려한 건물을 마지막으로 거치고 호텔에 도착했다.

익히 들은 것처럼 취재진 사이사이엔 대남관계 전문 기관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참사 6명이 동승, 사실상 감시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려명거리 어떻습니까. 선생님들이 믿지 않겠지만 저 건물엔 전부 노동자들이 삽니다. 간부는 안 삽네다”며 “기회가 되면 꼭 가보셔야 할 텐데…”라고 권유했다.

하늘색 연두색 갈색으로 채색된 두 거리의 다양한 모양, 다양한 높이의 건물들은 북한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다만 외신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됐기 때문에 ‘억~’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남측 일행 중엔 2005년에 평양은 한 차례 방문했던 인사가 있었는데 그는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었다. 당시 평양은 말 그대로 회색도시였다. 페인트된 건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거리의 초등학생에게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학생들 가방이 이쁘다”고 하자 북측 인사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아이들에게 드는 가방 대신 메는 가방을 줘라. 색깔도 분홍색 남색 등 여러 개를 골라 학생들이 선택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소개했다.

평양 곳곳을 자세히 관찰하면 두 거리 이면에 숨겨진 어둠이 드러난다. 30~4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낡은 아파트에서 화분 하나 내다놓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거리를 촬영할 때면 “선생, 어디에 쓰려고 사진을 찍는 겁니까”란 제지가 이어졌다. 평양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떤가. 순안공항에서 숙소를 오갈 때, 방문 나흘 째 평양 외곽으로 이동할 때가 그랬는데 나이 든 노인들이 호미 하나 들고 길거리에서 나무 심는 모습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온 나라와 전민이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유훈 통치’는 한 나라의 중심을 잡아주고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로 연결되지만 평양의 경우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소개한 문구들이 평양 시내 주요 건물들에 내걸렸는데 정작 지금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은의 이름은 잘 보이지 않는다. 평양은 해가 지면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다. 북측에서도 “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아낄 땐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곳이 있다.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가 그렇다. 취재진 숙소 앞 대동강 건너편이 바로 북한이 자랑하는 대학, 김책공대인데 캄캄한 밤이 되면 두 부자의 초상화만이 은은하게 빛을 뿜어낸다. ‘유훈 통치’를 넘어 ‘유령 정치’에 가깝다. 4월15일 김일성 생일이 다가오면서 취재진이 평양을 떠날 무렵엔 김일성 광장에도 번쩍번쩍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북측 인사는 생일 관련 경축 행사를 연습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김일성-김정일주의’ 말고 가장 많이 본 단어는 ‘만리마 속도전’과 ‘결사옹위’다. 북측은 “려명거리의 건물이 7시간에 한 층이 올라간다”는 얘기 등으로 ‘만리마 속도전’을 홍보했다. 장비가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주민과 군인들의 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다. ‘결사옹위’는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해 김정은을 지킨다’는 뜻이다.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제일총폭탄이 되자’, ‘강경엔 초강경으로’ 등의 문구에선 남한 및 미국과 초긴장 대치를 이루는 상황 속에서 김정은 정권의 유지를 목숨 걸고 이뤄내겠다는 처절함이 묻어났다.

그래도 코리아는 코리아였다. 지난 3일 중국국제항공을 타고 순안공항에 내린 뒤 가장 먼저 마주친 이는 수화물 찾기 전 복도 끝에서 제복을 입고 서 있는 공항 여직원이었다. 그는 취재진은 보더니 “안녕하십네까”라며 미소를 짓고 인사했다. 수화물 검사는 예상대로 까다로웠지만 출입국 사무소 직원들은 “인천은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네까?”, “평양 날씨가 더 추울 텐데 감기 조심하십시오” 등의 말을 건네며 경직된(?) 남측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려 애썼다.

북한은 이번 여자아시안컵 예선을 국제대회 시리즈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오는 7월 22세 이하(U-22) 아시안컵 예선의 평양 개최가 확정됐고, 10월엔 19세 이하(U-19) 아시아선수권 예선 유치 신청도 해 놓았다. 그런 와중에 남측 인사들이 왔으니 사고 없이 보내면서 최대한 성의를 보여주려 했다. 기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인터넷 문제도 큰 무리 없이 해결됐고, 메신저 서비스나 SNS 등을 통해 기사와 사진 동영상이 송고됐다. 호텔과 김일성경기장,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개선문 등에서 미소와 친절이 이어졌다.

말이 통하고 음식이 같고, 화제가 비슷하다보니 마음도 금세 통했다. 민화협 젊은 인사들과는 자녀교육 문제 등으로 마음을 터 놓았다. “딸이 세 돌이라 아직 멀었다”는 말을 건네자 민화협의 한 참사도 “저도 아들이 이제 네 살인데 언제 키워서 장가 보냅네까. 우리 둘이 똑같습네다”라며 웃었다. 버스를 탈 때마다 남과 북의 남자들은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순안공항에서 출국하기 직전 취재진과 민화협 인사들은 손을 꼭 잡고 기념촬영을 했다.

한 북측 인사는 “지금 북.남 관계가 너무 팽팽하지만 조만간 나아지지 않겠습네까”라며 꽁꽁 얼어붙은 양측의 교류가 곧 재개되기를 바랐다. 체류 기간 내내 취재진은 달러를 썼는데 잔돈을 거의 대부분 중국 위안화로 받았다. 심하면 껌으로 받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돈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평양에서 머무는 기간 내내 취재진이 받았던 질문이 있다. 바로 내달 9일 열리는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는가였다. 남측 기자들이 10명이나 오다보니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그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취재진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 “어떻게 북측 분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압니다”와 같은 말로 받아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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