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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울리는 인터넷 기차표 예매

시각장애인 울리는 인터넷 기차표 예매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7-01-10 23:02
업데이트 2017-01-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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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명절 승차권 예매, 7년째 음성지원 설명 듣다 끝나네

“저희도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습니다.”

시각장애인 최모(37)씨는 10일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이번에는 인터넷으로 설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글자는 구분할 수 없고 사물만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최씨는 2010년 자신과 같은 저시력 장애인 남편을 만났다. 시댁이 부산이라 이때부터 명절마다 부산행 기차표 예매를 시도했지만 7년간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경부선 설 열차표 예매일인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안이 표를 예매하기 위해 찾아든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경부선 설 열차표 예매일인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안이 표를 예매하기 위해 찾아든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최씨는 인터넷 예매일을 “괴롭고 힘든 날”이라고 했다. 컴퓨터에 내장된 화면읽기 음성지원 프로그램으로 웬만한 인터넷 사이트를 어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명절 기차표 예매 사이트는 3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접속이 끊겨버려 예매는커녕 설명을 다 듣지도 못한다. 개인 접속 횟수가 6번으로 제한돼 있어 최씨에게 예매의 벽은 높디높다.

최씨와 함께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예매 사이트 내용을 절반도 채 못 읽었는데 3분이 지나버렸다. 접속이 끊기자 최씨는 ‘또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번에는 남편이 연차를 냈습니다. 명절이면 서울역에 가려고 번갈아 연차를 쓰죠. 둘 다 저시력이라 외출이 쉽지 않지만, 명절 기차표는 전화로도 예약이 안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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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열차승차권 예매가 시작된 10일 시각장애인 최모씨가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무실 PC로 예매를 시도하고 있다. 음성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출발역과 도착역을 설정했지만, 출발시간을 정하기도 전에 전체 3분 가운데 2분 55초가 지났다.
설 연휴 열차승차권 예매가 시작된 10일 시각장애인 최모씨가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무실 PC로 예매를 시도하고 있다. 음성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출발역과 도착역을 설정했지만, 출발시간을 정하기도 전에 전체 3분 가운데 2분 55초가 지났다.
코레일은 명절 승차권 중 70%를 인터넷을 통해, 30%는 역 창구와 대리점에서 통해 판매한다. 이날 최씨의 남편은 오전 6시쯤 용산역으로 출발했다. 시각장애인에게 현장예매는 말 그대로 고역이다.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대중교통을 이용해 낯선 곳을 방문해야 한다. 대기장소를 찾지 못해 역에 가고도 허탕 친 적도 있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지인도 있습니다. 기차보다 훨씬 더 힘듭니다. 지하철로 터미널에 간 뒤 매표소에서 표를 찾아 버스가 주차된 곳까지 찾아가려면 장애물이 즐비합니다. 4년 전에 버스로 가본 적이 있는데 부모님이 섭섭해하시더라도 가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위험했습니다.”

최씨의 하소연을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최씨의 남편은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현장예매에 성공했다고 전화를 했다. “올해는 다행히 내려갈 수 있겠네요. 올 추석에는 취소표나 대기표만이라도 전화로 예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장애인의 고충을 전해 들은 코레일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입증하는 승객에 대해 명절 승차권 예매의 접속 시간을 연장해주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7-01-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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