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한센인 “사람 사는 세상…여기라고 희로애락 없겠나”

소록도 한센인 “사람 사는 세상…여기라고 희로애락 없겠나”

입력 2016-08-09 16:15
업데이트 2016-08-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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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마을서 이성 문제 갈등…한센인이 다른 한센인 2명 살해하고 자해

“결국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어요. 희로애락은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거죠.”

9일 전남 고흥군 소록도 한센인 마을에서 경찰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주민 A(63)씨는 연합뉴스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전 4시 45분께 경찰 통제선 넘어 집 안에서는 한센인 오모(68)씨가 휘두른 흉기에 거주민 최모(60·여)씨가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언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자리한 또 다른 한센인 마을에서는 주민 천모(65)씨가 자신의 집안에서 오씨에게 살해당했다.

오씨는 최씨를 상대로 1차 범행을 저지른 뒤 두 번째 범행 장소에서 천씨를 살해하고 자해를 시도했다.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지만 중태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로 연결된 세 한센인은 강제 수용당한 소록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성년이 되자 전국의 정착촌으로 흩어져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각자의 삶을 개척해왔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 건강이 나빠지면서 소록도로 돌아왔다. 오씨는 2010년에, 최씨는 2013년에, 천씨는 지난해 한센인 마을에 정착했다.

지난해까지 한마을에 살았던 오씨와 최씨는 서로 힘든 일을 돕고 의지하며 가까워졌다. 올해 들어 최씨가 더 조용한 마을에서 살고 싶다며 이사하고 나서도 두 사람 사이의 왕래는 잦았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이들 사이에 천씨가 끼어든 것은 최근 무렵이다.

오씨와 지척의 거리에 사는 천씨는 이웃 마을에서 종종 찾아오는 최씨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세 사람 모두 이웃 간 돈독한 정을 이성 간 감정으로 키워나갈 여지가 있었다.

A씨는 “500여명이 부락을 이뤄 흩어져 사는 소록도는 주민 대부분이 소일거리 없는 고령자다”며 “작은 소문도 반나절이면 섬 전체로 퍼지는 등 여느 시골 마을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고 설명했다.

세 사람을 둘러싼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오씨의 귀에도 흘러들어 가게 됐고 한센인 마을 조성 100년 만에 첫 번째 주민 간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오씨와 같은 마을에 사는 소록도 주민 김모(77)씨는 “한센인 마을이라고 해서 이웃 간에 감정 상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단절된 세상 안에서 외지인 모르게 음모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며 “동요하는 이웃들도 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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