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이 죽는다면’ 독립투사 부친의 애끊는 고백

‘너 같이 죽는다면’ 독립투사 부친의 애끊는 고백

입력 2015-08-13 07:44
업데이트 2015-08-13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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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된 박상진 의사 부친이 쓴 ‘제문’…자랑스러움·원망 절절해울산박물관, 영남 독립운동사 재조명 특별기획전

”만약 너 같이 죽는다면 슬퍼할 것이 없겠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형무소에서 처형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고백.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 고헌(固軒) 박상진(1884∼1921) 의사의 아버지 박시규옹이 1923년 아들의 2주기를 맞아 쓴 제문 ‘제망자상진문(祭亡子尙鎭文)’이 13일 울산박물관에 전시됐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 만큼이나 크게 자리 잡은 원망, 현재 고된 생활에 대한 한탄, 그럼에도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과 사랑 등 복합적인 심경이 꾹꾹 눌러담긴 제문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박옹은 아들의 의로운 죽음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네가 살았을 때에는 너의 인망이 이와 같았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았어도 그 시대에 아무 이익이 없고, 죽은 뒤에도 후세에 남길 만한 소문이 없이 그냥 왔다가 그냥 가게 됨은 온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일이지만, 만약 너 같이 죽는다면 슬퍼할 것이 없다 하겠다.’

또 고헌이 사형당한 후 국내외에서 이어진 추모와 칭송, 고헌의 비범함을 알 수 있는 어릴 적 일화 등도 상세히 담았다.

아버지는 그러나 아들이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으면서 포기해야 했던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삶, 가장의 부재로 빼앗긴 농토와 그로 말미암아 가족이 처한 열악한 현실 등도 구구절절이 적었다.

’나는 네 나이 40세에 이르도록 왜 가정을 돌볼 생각이 없었는지, 그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원망스럽기만 하다. 늙은 부모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어린 처자들도 걱정하지 않았느냐. 일곱 식구가 먹고사는 농토를 아무 까닭 없이 넘겨주었으니….’

요동치던 감정의 진폭은 아들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와 애절한 애정으로 끝을 맺는다.

’인간 세상에서 한 번 작별한 것은 순식간에 불과할 뿐이니 지하에서 만나게 됨은 장차 한이 없을 것이다. 이 제문은 내가 너에게 이별을 말하는 바요, (제사상의)이 술과 음식은 오직 내가 너에게 먹고 마시도록 권하는 바이다. 너는 감격스레 여기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고 흠향(신명이 제물을 받아서 먹음)하기 바란다. 가슴 아프다.’

고헌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그는 1910년 판사등용시험에 합격해 평양지원으로 발령났으나 “재판은 일본인에 의해 독단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낫다”며 부임을 거절했다.

이후 1915년 대구에서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으로 추대돼 경주 우편마차 세금 탈취, 길림 광복회 설립, 친일파 처단 등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대한광복회는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면서 일경(日警)에 밀고하거나 협조하지 않는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결국 친일 부호와 악덕 관리 살해를 교사하고 내란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37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울산박물관은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광복, 다시 찾은 빛’을 10월 1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광복 70주년과 광복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영남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광복의 소중함을 되새기고자 기획됐다.

고헌의 활동을 중심으로 영남의 독립운동 전개 과정, 독립운동가 활동상과 유품,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과 아동문학가 서덕출 선생 관련 자료, 울산지역의 만세운동 등을 확인할 수 있다.

22일에는 광복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광복회와 박상진 의사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도 열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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