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side] 서민 애환 깃든 서울중앙지법 ‘과태료 재판 법정’ 직접 가보니

[Weekend inside] 서민 애환 깃든 서울중앙지법 ‘과태료 재판 법정’ 직접 가보니

입력 2012-04-07 00:00
업데이트 2012-04-0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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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자 되나” 발 동동… “한번만 봐줘요” 손 싹싹

“아이고,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법원을….”

“승차거부했다고 전과자로 남고 싶지는 않습니다, 택시기사로서 최고의 불명예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님, 억울합니다.”

“인수한 가게에 있던 간판을 그대로 사용한 건데 불법인지 몰랐어요. 식당벌이도 시원찮은데 봐주시면 안 되나요.”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이 서류 한 장에 신분증만 달랑 들고 변호사 없이 찾는 법정이 있다. 시청·구청 등 행정 관청으로부터 부과받은 과태료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깟 과태료 몇 만원’이 이들에게는 하루 일당이고 생활비다. 지난 4일 찾은 서울중앙지법의 과태료 재판 법정은 억울함과 선처를 호소하는 서민들로 북적였다.

법을 어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말만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운전하는 사람치고 주차위반, 과속 딱지 한 번 떼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걸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금연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버리고, 무단횡단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과태료 재판이 열리는 동관 466호 법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장 큰 민사법정이다. 같은 시간대에 많게는 수십 명이 재판을 받으러 오기 때문에 방청석이 넓은 법정이 배정됐다. 서울중앙지법에서만 4명의 단독판사가 과태료 재판을 맡고 있는데, 지난 한 해 동안 789건이 접수됐다. 주식회사에서 등기를 제때 하지 않은 상법 위반자, 스팸 문자를 상대방 동의 없이 보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 위반자, 승차거부 택시기사, 주정차 단속에 적발된 사람들은 과태료 법정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당사자들이다.

‘법을 잘 몰랐다.’, ‘형편이 어렵다.’는 건 과태료 재판을 찾은 서민들의 단골 호소다. 위반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잘못했으니 이번 한 번만 봐달라’는 식인데 표정에는 절박한 사정이 절절히 묻어난다. 룸살롱 업주에게 명단을 받아 스팸 문자를 보내는 아르바이트를 한 박모(35)씨는 750만원이라고 찍힌 과태료 용지를 보고 놀라 한달음에 달려왔다. 경위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담에 연락하라’며 명함을 준 손님들에게만 홍보문자를 보낸 건데 억울하다.”면서 “취업 준비 중인데 선처해 달라.”고 읍소했다. 불법 주정차 단속에 걸린 우체국 집배원은 “공무수행 중 시장길에 잠시 주차해 둔건데 너무하다.”면서 “과태료는 집배원 개인이 물어야 한다. 봐달라.”고 말했다. 위반 사실을 부인할 경우 법원은 해당 행정관청에 의견조회를 한 뒤 과태료를 결정한다. 사정을 참작해 과태료를 일부 줄여주기도 한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과태료 액수가 몇 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있는 만큼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무조건 봐줄 수는 없고 사정을 들은 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감액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2012-04-0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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