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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아라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미숙아라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입력 2011-04-17 00:00
업데이트 2011-04-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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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g 미숙아’ 살린 부모 단독 인터뷰···”생사 넘나든 생후 9개월···”

18일 9개월의 병원 생활을 접고 엄마 품으로 돌아간다. 280일간 사투를 벌인 은식이의 ‘생명 의지’에 사회적 울림이 크다.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깊다. 지난해 7월 그는 임신 26주 만에 볼펜 크기만 하게 세상에 나왔지만 하루하루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였다. 부모 김태웅(41)·이금현(40)씨는 “초미숙아였지만 은식이는 눈썹, 머리카락, 손발톱 등 있을 것은 다 있는 온전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충북 충주시의 한 작은 교회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이 부부의 절박한 심정을 단독으로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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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 380g으로 태어난 미숙아 ‘은식이’의 부모
몸무게 380g으로 태어난 미숙아 ‘은식이’의 부모


→은식이가 380g의 미숙아로 태어난 이유가 있나요.

-이씨 지난해 5월쯤 임신 5개월이었는데 다니던 병원에서 양수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노산이기도 하고 태어날 아이가 기형아일 수도 있으니 검사하자는 거였어요. 물론 기형아라도 전 낳을 생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양수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첫째인 다섯살 딸 은영이는 네번 힘주고 너무 쉽게 낳았거든요. 은식이도 그럴 줄 알았어요. 양수가 두번 터졌어요. 그래서 병원에 2주 동안 입원했어요. 양수가 또 새고 상태가 안 좋아 계속 입원했는데 임신중독증, 그것도 고위험 상태라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양수가 다 샜고, 이 상태로는 아기 못 낳는다. 산모도 애도 위험하니 애를 포기하라’고 했어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많이 놀라셨겠어요.

-이씨 (표정이 어두워지며) 막막했어요. 아기한테도 미안하고. 아기 아빠는 “자기는 포기할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김씨 내 아이 죽이면서 어떻게 사람을 살린다고 목회하겠나 생각했어요(김씨는 농촌 교회의 목사다). 의사한테 포기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가 여기는 시설이 없어서 애를 낳을 수 없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산모가 그렇게 위험한 상태면 산모부터 살리자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김씨 생명이 귀하기 때문이에요. 부모 마음이야 자식을 위하지만 집사람도 귀하고 둘 다 살리고 싶었지만 하나만 포기하라고 했을 때 병원에서는 당연히 예상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살릴 수 있는 사람만 살리자고.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보겠다고 상급 병원에 이원하는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병원 담당 교수님이 한 시간여 동안 여기저기 알아봐 주시는데 길게 느껴지더군요. 겨우 연락이 닿은 삼성서울병원에 분만실이 딱 한 자리 남아 있다고 했고 바로 앰뷸런스가 와서 (아내를) 분만실로 실어 갔어요. 그렇게 나흘을 견디다 지난해 7월 12일 아이를 낳았어요. 자리가 없었거나 조금만 늦거나 했으면.

-이씨 우린 돈도 없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모든 게, 우연찮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게 다 우리를 살리려고 한 거라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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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이나 시댁에서 아기 낳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나요.

-김씨 상황이 급박해서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하고 바로 이동해서 낳았으니까요.

→옮긴 병원에서는 뭐라하던가요.

-이씨 살고 죽는 것은 자기네(의사)들이 할 일이 아니다. 신한테 맡겨야 한다. 자기네들은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했어요.

→은식이를 처음 봤을 때는 어땠나요.

-김씨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기를 보라고 해서 제가 몇 그램이냐고 물으니까 “380g”이라는 거예요. (참담한 표정으로) 임신중독증이 생기면서 아기가 오히려 작아진 거예요. 우리 아들이지만 380g이라니까 책에서 본 것처럼 사람 같지 않고 빨간 쥐같이 생겼으면 어떡하나 생각했죠. 처음에 딱 봤는데 애가 너무너무 예쁜 거예요. (부부가 서로 웃으면서) 눈썹, 머리카락, 손톱, 발톱 다 있고 또 눈을 떴는데 깜빡깜빡하고 팔다리를 힘 있게 움직였지요. 죽을 애 같지 않고 살겠구나 싶었어요.

-이씨 제왕절개수술하고 나서 간호사가 “아들이에요.”라는데 감사했어요. 내 소원이 이뤄졌구나 했어요. 저도 외동딸이라 형제끼리 아웅다웅 노는 게 너무 부러웠거든요. 처음 봤을 때 바로 손발부터 살폈어요. 손가락 발가락 10개 다 있으니 됐다 하면서 안심했어요.

→미숙아로 태어났으니 많이 고생했을 텐데요.

-이씨 절대 우울증에 안 걸릴 털털한 성격이었는데 우울증이 생겼어요. (웃으면서 이야기하다 갑자기 웃음이 뚝 끊기며) 마트를 못 가겠더라구요.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차라리 날 죽이고 내 아이를 살리지 싶어서. 은식이가 나서 3일 만에 동맥을 수술하고, 1200g이 됐을 때 탈장수술 하고. 애가 너무 어린데 수술해서 힘들어하는 모습 보니까. (울먹거리며) 병원에서 미숙아에게 망막수술도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이가 우유 10㏄도 소화를 못시키는데, 이 수술까지 하다가는 죽을 거 같았어요. 겁이 났습니다. 아이를 살려 달라고 수술 전날 기도했는데 수술 당일 아침에 병원에서 아이가 눈이 좋아져서 수술을 안 해도 되겠다고 하더라구요. 살았죠.

→혹시 육아일기 같은 것은 쓰셨나요.

-이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쓸 새도 없었어요.

-김씨 우리는 매일 6시 25분쯤 병원에서 오는 문자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은식이 몸무게가 몇 그램이고 우유를 몇 ㏄ 먹었다는 문자가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서. 금식이다 하면 바로 서울로 가는 거고, 조금 먹는다 하면 안심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거죠.

→몸무게 늘어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하죠.

-김씨 우리는 몇 ㎏이 아니라 몇 g이냐가 중요해요. 초저체중 아이는 폐 문제가 가장 커요. (폐가 작으면) 숨을 못 쉬니까. 방법은 하나. 아이가 커져서 폐도 커져 폐활량이 커지는 것밖에 없어요. 그러니 그램 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어요. 몸무게가 마의 산처럼 아무리 가도 갈 수 없는 산처럼 보였어요. (은식이가 태어나고) 9개월이 가도 자꾸 뒤로 가는 느낌이었죠. 무게가 늘기도 하고 다시 줄기도 하니까. 한 발자국 가면 두 발자국 뒤로 가는 느낌이었어요.

→은식이는 서울 병원에 있고 부모님은 이곳 충주에 있었던 건가요.

-이씨 저는 시간 날 때마다 갔어요. 맨 처음에 아기 낳고 보러 갔는데 내가 간 다음날 아기 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안 가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기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아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한번은 간호사가 이러는 거예요. (아기 얼굴이 왼쪽 어깨에 닿게 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어머니가 항상 이렇게 안으셨어요? 이렇게 안지 않으면 보챈다고 하면서. 제가 항상 그렇게 안았거든요.

-김씨 저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못 켜고 다녔어요. 애한테 미안해서 숨쉬는 게 미안해서. 아기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숨 한번 쉬려고 애쓰는데.

→은식이 같은 미숙아 치료를 보며 느낀 점은요.

-김씨 은식이 하나에 의사 10명, 간호사 25명이 3교대로 돌보더라구요.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굉장히 세밀하게 관찰하고 검사를 하고 거기에 대한 진단을 하고 처방 내리는 게 너무 미세한 분야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뛰어나다고 해서 애를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력지원 예산지원이 많이 돼야겠지만 살려낼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았어요.

→은식이를 보면서 부모로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씨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데 은식이를 보니까 지금도 숨 한번 쉴 때마다 (양손으로 옆구리 부분을 가리키며) 횡격막이 쑥쑥 들어가요. 숨 한번 쉬는 게 (은식이의 경우) 온몸을 이용해서 숨을 쉬는 건데,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들은 자신이 숨쉬는 것에 대해 감격이 없지 않나 싶어요.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스스로 죽기도 하고. 380g짜리가 어떻게든 살려고 애쓰고 마침내 살게 됐죠. 이런 거 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웅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씨 (다시 울먹이며) 굉장해요. 숨을 다 놔버리기 때문에 못 사는 건데 얘는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데. 은식이 살려 주셔서 의사 선생님한테 감사하다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은식이가 스스로 살려고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은식이가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나요.

-김씨 우리 아이가 똑똑하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개구쟁이처럼 신나게 놀면서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이씨 병원에 가니까 의사 선생님이 제일 멋있어 보이더라구요(이 말에 부부가 함께 웃었다). 의사들이 열정적으로 일하는 거 보고 (은식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삼성병원 가서 취직하면 감회가 새롭겠다 싶었어요.

→은식이 같은 미숙아를 가진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김씨 아이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내 아이는 일찍 낳은 것뿐이고, 내 아이는 내가 사랑하면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어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글·사진 충주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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