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어려서부터 꿈꾸던 스튜어디스 시험에 응시해 최종 임원면접을 앞두고 있었던 박후남(24)씨는 제복을 보자마자 고민이 생겼다. 스튜어디스를 상징하는 비행기 날개 문양 옆에 달린 이름표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 어려서부터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던 후남씨는 지난 3월 법원에 개명 허가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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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신청자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여성”
이름을 바꾸려는 여성이 꾸준히 늘고 있다.21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명을 신청한 4만 8886명 가운데 83.9%인 4만 1025명이 이름을 바꿨다. 지난 2000년에는 3만 3210명이 신청,79.9%인 2만 6535명이 개명 허가를 받았다. 개명 신청자나 허가율이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5년 동안 개명신청을 대행하고 있는 법무사 장성일(40)씨는 “최근에는 한달 평균 80여명의 고객 가운데 65%가 여성이며, 젊은층보다 30∼50대가 많다.”고 밝혔다.
김정자(29)씨는 결혼 8개월 만인 지난달 이름을 바꾸고 혼인신고를 했다. 연애할 때는 가명을 사용하던 김씨는 혼인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남편에게 본명이 탄로났다. 주부 김화분(36)씨는 지난 5월 자영업에 종사하는 남편의 수입이 줄자 대형 할인점에 자리를 알아봤다.‘○○엄마’라고만 불리던 김씨는 막상 본명으로 사회생활을 하려니 어린 시절 놀림받던 기억이 떠올라 개명 신청서를 냈다.
●개명 1995년 이후 활발
신향미(32·申香米)씨는 대학시절 교수의 농담섞인 말 한마디 때문에 개명을 결심한 케이스. 강의 도중 “이름에 ‘미’(米)자가 들어가면, 평생 닭이 모이를 쪼듯 콕콕 쪼이면서 살 것”이라고 한 말이 마음에 남았다. 신씨는 “이후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이름 탓이라고 생각됐다.”고 털어놨다. 신씨는 2002년 ‘쌀 미(米)’자를 ‘아름다울 미(美)’로 바꿨다.
개명 신청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슬기·보람·하늘·이슬 등 ‘한글이름’붐이 일어난 1989년 전후 출생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한 학급에 같은 이름을 가진 학생이 2∼3명에 이른 것. 급기야 법원은 ‘놀림을 받는 이름에 한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1995년 한해 동안 한시적으로 초등학생에 한해 학교장의 허락만 받으면 개명을 허용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도, 실제 바꾼 사례도 드물었지만, 당시 개명사례가 일반인에게 알려지면서 개명 신청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깜찍한 한글 이름이 어른이 된 다음에는 오히려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명을 원하는 사람도 꾸준하다. 수원에 사는 주부 신문자(39)씨는 “1991년 딸을 낳은 뒤 대학생 조카가 추천하는 ‘슬비’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크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슬비를 좋은 뜻을 가진 한자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름도 시대 유행 반영
지난 2000년 인기드라마 ‘가을동화’가 방영된 직후에는 주인공 은서, 준서의 영향을 받아 신생아 이름에 ‘서’자 돌림이 유행하기도 했다.2∼3년 전에는 영어식 표기가 편한 ‘유리’‘지나’ 등이 인기를 얻었다. 부모의 성을 이름에 넣는 것도 새로운 추세. 연예인 부부 김태욱·채시라씨는 딸의 이름을 ‘김채니’라고 지었다. 최근에는 ‘한가족 한자녀’현상이 두드러지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은재·현경·민성·성인 등 중성적인 이름도 유행하고 있다.
8년째 구청을 찾는 민원인을 대상으로 신생아 1800여명의 이름을 무료로 지어주고 있는 이동우(53) 서초구청 민원여권과장은 “80년대 후반 ‘한글이름’붐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이름이 사회변화와 꾸준히 연관지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2004-12-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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