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前신민당 총재 별세

이민우 前신민당 총재 별세

입력 2004-12-10 00:00
수정 2004-12-10 08:0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가 9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89세.

1958년 4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6선(4·5·7·9·10·12대)을 거쳤고,78년엔 국회부의장도 역임했다. 비록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이른바 ‘3김’의 그늘에 가려 대권 도전 기회까지는 잡지 못했지만,40여년 동안 야당의 외길을 걸어왔다.‘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12월 직선제 개헌논의의 와중에서 내각제 개헌과 선(先) 민주화론을 주장한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양김씨, 즉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탈당하고 신민당이 와해되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정치와는 일절 인연을 끊었다. 특히 야당 중진 때는 물론 야당 총재 시절과 정계은퇴 후에도 1999년 태릉의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강북의 삼양동 구옥에서 기거, 양계장을 꾸려나가면서 ‘삼양동 거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어진 돌’이라는 뜻을 지닌 인석(仁石)이라는 호에 걸맞게 후덕하고 서민적인 풍모로 여야 정치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원칙에 충실한 정치인으로 한번도 계보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치하인 1915년 9월5일 청주에서 태어나 41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중퇴한 뒤 46년 충북신보 영업국장을 거쳐 48년 고향인 청주에서 시의회 부의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4·19 이후 장면 총리의 인준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 신·구파가 갈등을 빚을 때 구파가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와 신민당을 창당하자 이에 가담했다. 이후 야당의 거목이었던 유진산 선생이 이끄는 ‘진산계’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진산이 작고한 이후에는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와 함께 ‘견지동 동우회’를 이끌었다.9대 국회 후반 신민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강경파와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의 온건파로 대립할 때 김 전 대통령편에 서서 정치적인 동지관계를 형성했다. 이 인연으로 5·17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정계은퇴 성명을 냈을 때 3개월 가량 총재권한대행직을 맡았으며, 정치규제 중에는 민주산악회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의안 서울시의원, 전농2동 경로잔치 참석… “어르신 헌신에 감사, 건강하고 행복한 의정활동 펼칠 것”

서울시의회 이의안 의원(더불어민주당, 동대문구3)이 10월 ‘경로의 달’을 맞아 지역 어르신들과 따뜻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이의안 의원은 지난 20일 성덕교회에서 개최된 ‘전농2동 어르신 초청 경로잔치’를 찾아 지역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따뜻한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행사는 평소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어르신들의 노고에 보답하고 주민 간 화합을 다지기 위해 마련됐으며, 300여 명의 어르신과 주요 내빈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올해 103세를 맞이한 장수 어르신이 직접 자리를 함께해 행사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빛냈다. 지역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소통하는 취지로 마련된 ‘전농2동 어르신 초청 경로잔치’가 지난 20일 성덕교회에서 열린 가운데, 이 의원이 참석해 어르신들과 뜻깊은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300여 명의 지역 어르신과 내외 귀빈들이 참석해 서로 온정을 나누고 화합을 도모했다. 이 자리에는 특히 103세의 고령인 장수 어르신도 함께 참석해 행사의 의미를 더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의원은 축사를 통해 “지역사회 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 어르신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thumbnail - 이의안 서울시의원, 전농2동 경로잔치 참석… “어르신 헌신에 감사, 건강하고 행복한 의정활동 펼칠 것”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2004-12-10 3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