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독립운동가’ 위암 장지연

‘11월의 독립운동가’ 위암 장지연

입력 2004-10-30 00:00
수정 2004-10-30 07:01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국가보훈처는 29일 일제 강점기 ‘애국 계몽활동을 펼친 위암(韋庵) 장지연(1864∼1920)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선생은 주로 언론활동을 통해 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킨 언론인이었다.

유학의 전통과 춘추(春秋)의 필법을 저널리즘에 잘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생의 붓끝은 당시 매우 날카로웠다. 특히 1905년 11월20일엔 자신이 사장이자 주필로 있던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이란 제하의 사설을 게재, 일제의 강압적인 을사조약 체결의 부당함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 사건으로 황성신문은 무기 정간됐고, 그는 일제 헌병대에 체포돼 4개월간의 옥고를 겪었다.

일제의 압력으로 황성신문 사장을 사임한 뒤에도 그는 1906년 국권 회복 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의 창립과 1907년 국채보상운동 등을 주도, 민족 의식의 고취와 독립정신 배양 등에 힘썼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도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한 선생은 1920년 11월1일 불의의 병으로 경남 마산 자택에서 57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선생은 앞서 1894년 초시에 합격한 뒤 1896년 상경,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을 경험하면서 진보적 개화 사상가이자 개신유학자로 거듭났으며 1898년에는 황성신문 창간에 참여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2004-10-30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결혼식 생략?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 생각은?
비용 문제 등으로 결혼식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웨딩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1. 결혼식 굳이 안해도 된다.
2. 결혼식 꼭 해야 한다.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