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자백’…증거 능력 첫 공개변론

시험대 오른 ‘자백’…증거 능력 첫 공개변론

입력 2004-09-10 00:00
수정 2004-09-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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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호 법정.사기 사건에 대한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피고인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신제품이 나와 ‘대박’이 터지면 투자금의 3배를 갚겠다는 것이지 6개월 뒤에 반드시 3배로 갚겠다고 진술한 적은 없습니다.

검사 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해 놓고 왜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합니까.

재판장 피고인이 검찰조서에 서명·날인한 것 맞습니까.

피고인 네.

재판장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면 원금의 3배를 되돌려주겠다고 속인 뒤 원금을 가로채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그는 법정에서 검찰조서의 내용을 부인했지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재판부가 김씨에 대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대법원 판례는 검찰이 작성한 신문조서에 피고인의 서명·날인만 있으면 증거능력을 부여해 왔다.그러나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논란이 되자 대법원은 오는 16일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여성이 종중(宗中)의 종원(宗員)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민사사건의 공개변론을 연 적은 있었으나 형사 사건 공개변론을 마련하기는 처음이다.

형사사건 공개변론은 처음

현행 대법원 판례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가 쟁점이다.지금까지는 피의자가 검찰조사를 마친 뒤 조서를 읽어본 뒤에 서명·날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더라도 조서의 진정성을 인정해 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조국 서울대 교수는 “대법원이 조서 말미의 서명·날인을 과대신뢰하고 있다.”면서 “검찰조서가 법정에서의 조서보다 신뢰성이 약함에도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올바른 법취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신동운 서울대 교수도 “검찰에서의 자백이 조서에 기재되면 사실상 피의자는 더 이상 방어를 할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검찰이 보강증거보다는 자백을 얻기 위해 더많이 노력하는 잘못된 관행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신문조서를 열람한 후 틀린 부분을 수정하고 원하는 내용을 추가한 다음에야 서명·날인토록 하고 있는 만큼 서명·날인된 조서는 도장을 찍은 계약서와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법정에서 이를 부인한다고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판례 뒤집히면 물증없는 자백은 무의미

대법원이 고심을 거듭하면서 공개변론까지 개최한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판례가 바뀔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만약 대법원이 종전의 판례를 뒤집을 경우 검찰수사는 상당부분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법정에서 검찰진술을 부인할 것에 대비,범죄를 입증할 보강증거를 확보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검찰 조서에 상당한 신뢰를 둬왔던 법원도 조서가 아니라 법정에서 제시된 증거와 진술을 최우선에 두고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원이 추진 중인 공판중심주의의 실현과도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피고인이 검찰에서 쉽게 시인,검찰을 안심시켜 놓고 법원에서 부인하는 악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다 급박한 판례 변경으로 수사 실무의 혼선을 빚을 우려도 만만찮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이런 점에서 대법원이 기존 판례의 큰 틀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을 위해 현재보다 좀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절충형 판례’를 제시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2004-09-10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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