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진 기자 양국 접경 단둥 르포
23일 중국 랴오닝 단둥 세관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단둥에서 산 전기밥솥과 그릇·담요 세트, 국화꽃 화환 등을 양손 가득 든 북한 사람들이 세관에 일찌감치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중단됐던 북·중 간 물적·인적 교류가 거의 정상화돼 가고 있는 분위기다.23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 세관 내부 주차장에서 식용유와 백설탕을 실은 차량들이 북한으로 건너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단둥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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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뒤 북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건너편으로 빠져 나갔다. 터질 듯한 포대자루, 배낭 이외에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전기밥솥과 담요 등 갖가지 생필품들이 손에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이날 세관 주차장에는 식용유, 백설탕 등을 가득 실은 트럭들도 눈에 들어왔다. 트럭 기사는 “식용유가 족히 10t은 된다. 하얀 포대는 백설탕이다. 모두 북한으로 넘어가는 물자들”이라고 확인해 줬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식품류 교역이 재개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때마침 북한 쪽에서 가스운반용 대형트럭 8~9대가 밀려 들어왔다. 인부들은 “빈 용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와 중국에서 액화가스를 채워 다시 넘어간다.”고 귀띔했다.
한편 이날도 단둥 시내에는 단둥 세관, 김정일 분향소, 변경 지역 등을 중심으로 외국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외국 기자와 중국 공안 간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기자도 이날 단둥 세관 건물 내에서 검역을 통과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촬영하려다 덜미를 잡혔다. 어느 나라에서건 세관 내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다. 들키지 않으려고 카메라를 가슴팍에 대고 셔터를 살짝 눌렀지만 셔터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누가 사진을 찍었다!” “어디냐?” “누구냐?”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전날에도 적지 않은 한국 기자들이 단둥 세관이나 단둥 기차역으로 들어오는 북한 사람들을 촬영하려다 공안으로부터 제지당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중국 당국은 지금까지도 북·중 접경지역에서 외신기자들의 취재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지만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단속 강도가 한층 강화됐다. 한 소식통은 “국경지역 동태에 관한 기사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역 안전부와 공안에 외신 동태를 집중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전해줬다.
실제 일부 국내 방송사 소속 카메라맨들은 세관에 주차된 트럭들을 찍다 연행된 뒤 촬영한 내용들을 모두 지우고 난 뒤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전날 밤에는 외신기자들이 주로 머물고 있는 단둥 중롄(中聯)호텔로 공안들이 들이닥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동안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지우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jhj@seoul.co.kr
2011-12-24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