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국방장관 DMZ 동시방문 안팎

한미 외교·국방장관 DMZ 동시방문 안팎

입력 2010-07-21 00:00
업데이트 2010-07-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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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우리의 군사동맹은 지금보다 더 강한 적이 없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국방장관 4명이 21일 비무장지대(DMZ)에서 확고한 한미동맹을 내외에 과시했다.

 사상 처음으로 열린 양국간 외교.국방장관회의(2+2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비롯한 유명환 외교장관,김태영 국방장관 등 네 사람이 나란히 DMZ를 방문한 것이다.

 클린턴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애초 계획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0시10분 6대의 경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승용차편으로 최전방으로 향했다.짙은 먹구름에 간헐적으로 내리던 보슬비는 DMZ가 가까워질수록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오전 11시14분께 캠프 보니파스에 도착한 이들을 한국군과 미군 등 15명이 마중나와 경례한 뒤 안내를 맡았다.유 장관과 클린턴 장관,김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짝을 이뤄 우산을 쓰고 15분 뒤 군사분계선(DML)에서 불과 25m 거리에 있는 오울렛 초소(일명 241초소)에 도착했다.

 초소에는 성인 가슴 높이까지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었고 초소 오른쪽에 태극기와 유엔기,성조기가 나란히 펄럭였다.

 유엔사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의 경비대대 에드워드 테일러 중령은 5분간 북한의 지형 등을 브리핑했다.클린턴 장관은 진지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망원경을 들고 북측 지역을 살폈다.

 게이츠 장관은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와 우리측 대성동에 걸린 태극기를 가리키며 “지금도 양측이 깃발을 더 높이 달려고 애를 쓰고 있느냐”고 물었다.이에 테일러 중령은 “네 그렇다”고 답변했다.기정동의 깃대는 160m이고 대성동 깃대는 100m 높이다.

 이어 테일러 중령은 “초소 앞 울타리에서 25m를 가면 군사분계선”이라며 “앞쪽으로 2개의 북한군 GP(초소)가 있고 30명의 북한군이 근무하고 있다.초소 오른쪽으로는 북한 기정동이,왼쪽으로는 대성동 마을이 보인다.북한 기정동 북쪽으로 2km 정도에 개성공단이 있다”고 설명했다.

 오울렛 초소는 6.25전쟁 영웅 고(故) 조셉 오울렛 일병의 이름이다.조셉 일병은 6.25전쟁 개전 초기인 1950년 8월31일부터 9월3일까지 낙동강 방어선인 영산지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해 미 대통령이 의회 명의로 수여하는 ‘명예대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던 인물이다.

 초소는 1991년 미2사단에서 유엔사 경비대대로 운용 주체가 전환됐다.조셉 오울렛 일병의 종손(從孫)인 윌리엄 오울렛 일병이 미 2사단 210화력여단 본부에서 복무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4명의 장관들은 5분간 초소에 머문 뒤 ‘자유의 집’으로 향했고 30명의 한국군과 미군이 이들을 맞이했다.네 사람은 60년 동맹을 과시하듯 서로 미소지으며 대화를 나누면서 자유의 집에 들어섰다.

 2층으로 이동한 클린턴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미군과 캐나다 장교들과 악수를 했으며 클린턴 장관은 두명의 군인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이들은 각각 뉴욕과 캐나다 토론토라고 대답했다.

 오전 11시55분께 JSA내 군정위 건물(T-2)로 들어선 장관들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으며 건물 창문 너머에 있던 북한군이 건물 속으로 들여다보기도 했다.장관들은 5분간 건물에 머물다 나왔다.

 건물 뒤편의 북한 판문각에는 중국 관광객 7명이 남측을 내려다봤으며 2명의 북한군이 우비를 입고 철모를 쓴채 긴장된 모습으로 지켜봤다.

 건물을 나선 뒤 게이츠 장관은 “세 번째 DMZ 방문”이라며 “제가 여기 전망대에 올라와서 DMZ를 마지막으로 본지 20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쪽은 정말 거의 변한 것이 없지만,한국이 얼마나 성장하고 번영했는지를 보고 놀랐다.북한은 대조적으로 고립과 박탈이 지속되고 있다”며 “우리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 보았듯이 북한은 예상치 못한 도발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게이츠 장관은 “우리는 여기에 온 것은 정전협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한국과 미국,다른 국가의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 뿐 아니라 북한과 지역,세계에 한국의 안보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굳건하다는 강한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군사동맹은 지금보다 더 강한 적이 없다.이 동맹으로 어떠한 잠재적인 도발자들을 억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클린턴 장관이 결연한 목소리로 “이번에 비무장지대,자유의 집 그리고 유엔 정전위 본부를 처음 방문했다”며 “여기 전망대에서 남북한 사이 3마일 정도 분리된 국경을 내려다보니,이것이 얇은 선일지는 몰라도 이 두 곳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엄청난 진보를 이룩했다.한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고 직업과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고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공통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대조적으로 북한은 고립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클린턴 장관은 “한국,미국 사람들과 여기서 자유를 지키고 있는 다국적군들,지난 60년 동안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북한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그 길은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들이(북한이)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 미국은 한국 국민과 정부를 대신해서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우리는 우리 동맹국과 파트너들에게 확고한 방어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SA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군사회담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지난 2004년 11월1일 경비책임이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이관됐다.경비임무가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이양됐지만 유엔사 산하 JSA 경비대대 소속 주한미군 40여명이 JSA 경비대대 본부인 캠프 보니파스에 남아 유엔사의 작전 통제 아래 대대를 지휘하고 있다.

 JSA는 당초 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아 남북한 경비병과 출입 민간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으나 1976년 8월18일 북한군에 의한 ‘도끼 만행사건’이 발생한 후 충돌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이 설정되고 이를 경계로 양측이 각각 분할 경비를 맡아왔다.

 장관들은 낮 12시15분께 방문 행사를 종료했으며 클린턴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승용차 편으로,유 장관과 김 장관은 헬기로 JSA를 떠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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