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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폭탄, 공정 무너져 배신감” “그렇다고 野 용서한 건 아냐”

“세금폭탄, 공정 무너져 배신감” “그렇다고 野 용서한 건 아냐”

이하영, 기민도 기자
입력 2021-03-24 17:50
업데이트 2021-03-25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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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서울 표심… 판세 예측불허

“2017년 5월 새 대통령이 참모들과 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사진을 보면서 처음으로 정치에 설어요. 그땐 집값으로 뒤통수 맞을 줄 몰랐죠.”(서울 광진구에서 만난 30대 남성)

“선거 앞두고 LH 사태가 터져 문재인 대통령이 걱정됩니다. 절뚝거리면서라도 투표장에 갈 겁니다.”(마포구에서 만난 80대 남성)

차기 대선의 전초전 격인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25일 시작된다. 서울시민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49석 가운데 41석을 더불어민주당에 몰아줬다. 그러나 부동산 폭등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투기 사태가 이번 선거 최대 변수로 부상하면서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신문이 23~24일 서울 강남·광진·구로·노원·마포구를 찾아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니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분노는 예상보다 컸다. 다만 정권 심판의 의지를 보수 야당 후보를 찍어서 표출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고민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노원구(34.7%, 서울 평균 19.9%)는 지난 총선에서 갑·을·병 모두 여당이 휩쓸었다. 하지만 급상승한 집값만큼이나 민심도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편도 1시간 20분 거리를 매일 통학한다는 대학원생 장모(30)씨는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빨리 돈 모아 서울 안쪽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부동산 폭등으로 이젠 노원에 발붙이고 있는 것조차 감사해야 할 상황”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재건축 바람으로 술렁이는 상계주공아파트에서 만난 70대 퇴직공무원은 “현 정부 집권 이후 이번 LH 사태를 보고 화가 제일 많이 났다”고 했다. 그는 “집값에 코로나19에 서민들은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어느 놈들은 낙하산으로 요직을 꿰차고, LH 놈들은 정보를 빼내 재산 뻥튀기를 했으니 이 정부에 희망이 있겠느냐”면서 야당의 승리를 점쳤다. 그는 야당에 표를 줄 예정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벌써 국민의힘이 용서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마포구 마래푸(마포 래미안푸르지오)는 2014년 분양가보다 3배 가까이 상승해 ‘강북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꼽힌다. 마래푸 인근에서 만난 이모(29)씨, 손모(74)씨, 김모(83)씨는 2017년 대선과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모두 여당 후보를 뽑았지만, 지금은 입장이 갈렸다.

공덕래미안에 거주하는 공시생 이씨는 견제 차원에서 야당 후보를 뽑겠다고 했다. 그는 “공정함을 내세운 정부에 실망을 많이 했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으로 마음이 돌아섰다”면서 “2주택자인 부모님은 종부세와 재산세를 합쳐 예년에 비해 세금이 3배(1000만원에서 3000만원)가 늘어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그래도 집값이 오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저희 집만 오른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올랐고 실질적으로 수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금은 바로 피부로 와닿는다”고 답했다.

마래푸 2단지 로열층에 거주하는 손씨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이번에는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손씨는 “처음 34평 분양가가 7억원 조금 넘었는데 그게 18억원이 됐다”며 “집 하나만 가지고 있고 실거주용이니 집값이 오르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는 “세금을 올리면서 재난지원금 10만원을 공약하는 여당이 못마땅하다”면서도 “조금 더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지팡이를 손에 쥐고 마래푸 4단지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김씨는 문 대통령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잘해 오고 있다. 다만 부동산값이 안 내려가고 LH 문제까지 터져서 민심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절뚝거리면서라도 투표장에는 가겠다”면서 “그 사람(오세훈 후보)은 한 번 하다가 자기가 그만두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강남은 2017년 대비 서울에서 평균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 3.3㎡당 평균 4397만원에서 7492만원으로 4년 만에 3095만원(70.4%) 뛰었다. 삼성동에서 10년 넘게 부모님과 사는 이모(31)씨는 “최근 집값이 많이 올라서 부모님과 주위 어르신들이 ‘빨리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며 “이번에도 같은 정당(국민의힘)을 찍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값이 오르면 좋은 거 아니냐’라는 질문에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고 집을 구할 때를 걱정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금융회사 직원 박모(39)씨는 정부의 부동산 실정에는 동의하면서도 오 후보는 도저히 찍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 후보가 ‘급식충’(초등학생 무상급식 반대한 것을 표현)이고 민주당 고민정 의원한테도 광진에서 진 걸 세상이 다 안다”며 “오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강남역이 침수됐다. 당시 ‘오세이돈’이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했다.

오 후보가 당협위원장(광진을)을 맡고 있는 광진구도 집값 고민으로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자양사거리에서 만난 30대 예비부부는 지금까지 각각 민주당·정의당을 찍어 왔지만 이번엔 매우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예비신부 이모씨는 “맞벌이로 1억원쯤 모으고 ‘영끌’ 대출을 받아도 20년 넘은 아파트 한 채 갖지 못하는 게 정상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우리처럼 결혼 준비하는 사람치고 머리끝까지 열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예비신랑 남모씨는 “전임 시장 성범죄는 물론이고 정책 실패에 LH 사태까지 민주당을 뽑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지만, 국민의힘을 뽑을 이유도 딱히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거대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민주당 박영선 후보의 옛 지역구인 구로구에서도 나왔다. 부동산도 문제지만 정의와 공정이 무너진 것에 대한 실망감을 많이 드러냈다. 구로역 앞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이모(63·여)씨는 “조국 사태 때 마음을 바꾸었다. 반은 독주의 책임, 반은 LH 투기 사태의 책임을 물어 정권을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구로공구상가에서 일하는 한모(58)씨는 “정의, 공정에 반하는 일들이 많아지니까 배신감이 들었다. 솔직히 정부가 밉다”고 말했다.

구로에서 50년을 살며 민주당을 지지한 김모(75·여)씨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러지는 선거”라며 “이번에는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있던 한 주민은 “나는 1주택자이기 때문에 세금과는 관련이 없다”며 “박 후보가 구로에서 오래 일한 만큼 힘을 실어 줄 것”이라고 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21-03-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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