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비무장지대는 원색으로 채색돼 있다. 콘크리트의 회색에 익숙한 도시인의 눈에는 생경할 정도이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원색은 청량감을 던진다. 마치 학동시절 미술시간에 사용했던 크레파스의 순수한 색 그대로처럼. 여름 햇빛에 반사되는 녹색의 건강한 숲,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황톳길 위로 줄지어 행군하는 병사들의 그을린 얼굴, 짙푸른 논을 배경으로 비상하는 백로까지. 보이는 모든 것이 강렬한 원색이다.
산허리를 몇 굽이 돌아서 도착한 최전방 소대 막사 앞에서 만난 안내장교는 “멧돼지가 무지하게 큽니다. 족히 티코 자동차만하지요.”라며 기자에게 겁을 준다. “밥이 적다 싶으면 취사병에게 인상도 씁니다. 이 동네 깡패니까 조심하세요.”
병사들이 먹고 남긴 잔반을 모아 취사병이 막사 옆 산기슭에 갖다 놓자 정확히 시간을 맞춰 나타난 멧돼지는 실로 컸다. 늘상 접하던 군복 입은 병사 대신 사복을 입은 이방인을 보고는 멈칫하더니 그것도 잠깐. 잔반에 달려드는 들고양이와 까치들을 몰아내며 잔반에 큰 머리를 처박고 정신없이 먹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깔끔하게 처리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DMZ의 청소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남김 없이 밥그릇을 비운 녀석은 카메라를 향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포즈 한번 취해주고는 이내 숲속으로 사라졌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비무장지대는 적막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두들 바쁘다. 병사들은 웃자란 잡초 제거와 장마철 큰 물에 대비한 작업에 바쁘고, 산 속 꿩은 지난 봄보다 몸집은 커졌지만 아직은 어색한 꺼벙이를 돌보느라 분주하다. 어느덧 어른 티가 나는 덤불 속 고라니와 푸른 논에서 우아한 걸음걸이를 보이는 백로는 먹이찾기에 정신이 없고 ‘철원타이거즈’라 불리는 들고양이들은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DMZ의 식구들은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글 강성남 손원천기자 snk@seoul.co.kr
“우리는 친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장병들이 제공하는 잔반(일명 짬밥)은 철원군 양지리 민통선 지역 지뢰지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멧돼지가 가장 반기는 먹이다. 식사를 끝낸 멧돼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원도 인제 용늪에서 새초롬하게 얼굴을 내민 둥근이질풀(사진 위)과 도라지 모시대. 민간에서 한열, 경풍, 기관지염, 폐렴 등의 약재로 쓰인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젓한(?)행동으로 장병들로 부터 철원타이거즈라 불리는 들고양이들. 천적이 없어 개체수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강원 철원)
단란한 물범가족 서해 백령도 물범바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물범가족.
고고한 자태 서해 석도에서 매력적인 뒷머리깃을 하늘거리며 고고한 자태로 모습을 드러낸 저어새. 세계적인 희귀조류로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경기 강화)
고달픈 행군
한가한 오후 동부전선 깊은 산 중에 홀연히 나타난 호반새. 한국, 일본 등지에서 번식하고 필리핀, 셀레베스섬에서 겨울을 난다.(강원 인제)
강원도 고진동 계곡에 발을 담그면 몇 분만에 금강모치, 버들가지 등 토종 민물고기들이 몰려든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 월정리 역사를 몇미터 앞에 두고 멈춰선 열차가 흐드러지게 핀 들꽃 속에서 녹슬고 있다.
먹이 찾아 여름 철새인 쇠뜸부기가 강원도 철원평야 논둑길을 바삐 달리고 있다.
산허리를 몇 굽이 돌아서 도착한 최전방 소대 막사 앞에서 만난 안내장교는 “멧돼지가 무지하게 큽니다. 족히 티코 자동차만하지요.”라며 기자에게 겁을 준다. “밥이 적다 싶으면 취사병에게 인상도 씁니다. 이 동네 깡패니까 조심하세요.”
병사들이 먹고 남긴 잔반을 모아 취사병이 막사 옆 산기슭에 갖다 놓자 정확히 시간을 맞춰 나타난 멧돼지는 실로 컸다. 늘상 접하던 군복 입은 병사 대신 사복을 입은 이방인을 보고는 멈칫하더니 그것도 잠깐. 잔반에 달려드는 들고양이와 까치들을 몰아내며 잔반에 큰 머리를 처박고 정신없이 먹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깔끔하게 처리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DMZ의 청소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남김 없이 밥그릇을 비운 녀석은 카메라를 향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포즈 한번 취해주고는 이내 숲속으로 사라졌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비무장지대는 적막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두들 바쁘다. 병사들은 웃자란 잡초 제거와 장마철 큰 물에 대비한 작업에 바쁘고, 산 속 꿩은 지난 봄보다 몸집은 커졌지만 아직은 어색한 꺼벙이를 돌보느라 분주하다. 어느덧 어른 티가 나는 덤불 속 고라니와 푸른 논에서 우아한 걸음걸이를 보이는 백로는 먹이찾기에 정신이 없고 ‘철원타이거즈’라 불리는 들고양이들은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DMZ의 식구들은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사진 글 강성남 손원천기자 snk@seoul.co.kr
“우리는 친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장병들이 제공하는 잔반(일명 짬밥)은 철원군 양지리 민통선 지역 지뢰지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멧돼지가 가장 반기는 먹이다. 식사를 끝낸 멧돼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원도 인제 용늪에서 새초롬하게 얼굴을 내민 둥근이질풀(사진 위)과 도라지 모시대. 민간에서 한열, 경풍, 기관지염, 폐렴 등의 약재로 쓰인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젓한(?)행동으로 장병들로 부터 철원타이거즈라 불리는 들고양이들. 천적이 없어 개체수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강원 철원)
단란한 물범가족
서해 백령도 물범바위에서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물범가족.
고고한 자태
서해 석도에서 매력적인 뒷머리깃을 하늘거리며 고고한 자태로 모습을 드러낸 저어새. 세계적인 희귀조류로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경기 강화)
고달픈 행군
한가한 오후
동부전선 깊은 산 중에 홀연히 나타난 호반새. 한국, 일본 등지에서 번식하고 필리핀, 셀레베스섬에서 겨울을 난다.(강원 인제)
강원도 고진동 계곡에 발을 담그면 몇 분만에 금강모치, 버들가지 등 토종 민물고기들이 몰려든다.
한국전쟁 당시 철원 월정리 역사를 몇미터 앞에 두고 멈춰선 열차가 흐드러지게 핀 들꽃 속에서 녹슬고 있다.
먹이 찾아
여름 철새인 쇠뜸부기가 강원도 철원평야 논둑길을 바삐 달리고 있다.
2005-08-2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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