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김대벽씨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김대벽씨

입력 2004-09-13 00:00
수정 2004-09-1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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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세상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혼이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촬영을 거부했다.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는 ‘사진사’에서 ‘예술 작가’로까지 흘러가면서 사진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혼을 담는 그릇’이 된 것이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 하나쯤 갖고 있는 요즘 이런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있다.기술이 발달해 실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조작이 난무해 단순히 시간을 담는 기능조차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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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에서 한국인의 심성을 찾는다.”고…
“문화재에서 한국인의 심성을 찾는다.”고… “문화재에서 한국인의 심성을 찾는다.”고 말하는 김대벽씨의 사진에서는 이름 없는 작은 바위에서 혼이 묻어 나온다.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하지만 우리 곁에는 여전히 사진에서 혼을 추구하는 이가 있다.바로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 김대벽(75)씨다.

문화재에서 한국인의 심성을 찾다

“4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 제 발길이 닿지 않은 곳,제 카메라에 담지 않은 문화재가 없습니다.그래도 다시 찾을 때면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고 문화재와 마주 섰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음은 분명하다.하지만 세월의 때가 묻어 점점 닳고 바래 가는 것 외에 무엇을 볼 수 있기에 매번 다른 면을 보는 것일까.

“학자라면 문화재 그 자체를 보겠지요.하지만 저는 그 안에 담긴 한국인의 심성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흔히 한국인의 특징으로 꼽히는 순박함과 은근함을 문화재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특히 그가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가옥에서는 더욱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옥의 창호를 볼까요.아무리 강한 빛이 들어와도 갓난아이조차 눈부셔하지 않습니다.같은 창호를 쓰는 일본하고도 다릅니다.

일본은 창호를 바깥쪽에 바르지만 우린 안쪽입니다.문살을 직접적으로 보지 않기 위함이죠.이뿐만이 아닙니다.이름 없는 바위 작품 하나하나에도 ‘한국인’이 묻어 있습니다.”

넓은 세상을 만나려 사진으로 돌아서다

그의 꿈은 목사였다.장로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그런 그가 사진을 처음 접한 것은 6·25가 끝나 군제대를 했을 때였다.

“원로 사진작가인 정도선씨가 매형입니다.누님의 부탁으로 그 분 밑에서 아르바이트로 2년 반가량 일했지만 실상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졸업 후 계획했던 대로 교회로 갔지만 생각이 바뀌었다.“좁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매형 밑에서 꼬박 3년을 더 사진에 매달렸다.60년 현 문화재청의 전신인 구황실 재산사무총국에 취직해 문화재를 찍기 시작했다.

“사실 필요한 사진만 찍어 주면 문제가 없었죠.그런데도 이것저것 다 찍고 싶은 욕심이 나 주어진 일 외에도 빠져서 했습니다.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문화재와 인연이 있었던 거죠.”

이후 김씨는 60년대 잘나가던 잡지사의 사진부장을 지내고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기 최고의 인쇄회사에서 각종 기업 홍보 사진을 찍었다.

당시 광고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큰돈을 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하지만 그는 문화재와 함께 가는 길을 선택했다.

고급문화의 가치를 알리다

김대벽씨가 처음 접했던 문화재는 박물관 소장품이나 서민문화와 관련된 것들이었다.그러던 그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고건축물을 비롯한 우리 고급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이 무렵 지금껏 그와 함께 50여권의 책을 만든 목수 신영훈씨를 만나게 됐고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우린 중국 황실문화재의 규모를 보고 감탄하죠.그러면서도 정작 우리 고급문화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지도,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이건 한참 잘못된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민문화에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고급문화에도 이에 못지 않은,그 이상의 삶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나라를 해외에 홍보할 때 탈춤이나 사물놀이 등 주로 서민문화만을 소개할 것이 아니라 고급문화도 함께 알려야 합니다.물론 그전에 우리부터 관심을 갖도록 해야겠죠.”

김씨는 그래도 최근에는 우리 고급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그가 연구원으로 있는 한옥문화원의 각종 공개강좌에 모여드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70을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닌다.요즘은 고건축물뿐만 아니라 바위에 심취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다작하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나이까지 움직이는 이유는 문화재의 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사진 찍는 사람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죠.후세에 많은 자료를 남기는 것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돈이 되지 않는 문화재 사진을 이어줄 후배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났다.하지만 그보다도 40여년을 문화재에 바쳐온 열정이 더 빛이 났다.

“지금껏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찍을 겁니다.걸을 수 있을 때까지,제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말입니다.” 그는 오는 18일에도 신영훈씨와 함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공개강좌를 갖는다.서울역사박물관에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열린다.(02)741-7441.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04-09-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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