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도대체 왜 다시 트럼프일까/서정건 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도대체 왜 다시 트럼프일까/서정건 경희대 교수

입력 2023-08-22 23:50
수정 2023-08-2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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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선동, 민주주의 훼손에도 ‘건재’
엘리트 기득권 기회 독점한 미국 현실
극단적 유권자, 민주주의 실패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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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건 경희대 교수
서정건 경희대 교수
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공화당 경선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조 바이든을 상대로 한 가상 재대결에서도 거의 백중세라는 여론 조사가 적지 않다. 막상 공화당의 후보 경선은 내년 1월 15일부터 시작인데 트럼프 대세론은 요지부동이다.

재선에 나섰던 2020년을 기점으로 악화됐던 코로나 팬데믹 위기 내내 현직 대통령 트럼프의 좌충우돌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가 대통령 선거를 인증하던 날 의사당 앞의 지지자들을 선동해 폭도가 되도록 조장 내지 방조했던 것도 틀림없이 트럼프였다. 직접 후보들을 낙점까지 하면서 적극 개입했던 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오히려 민주당 선전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급기야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가 대안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난 몇 개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트럼프가 선거판의 중심에 다시 등장할 수 있었을까.

여배우 입막음을 위한 자금 유용과 국가 기밀문서 유출, 그리고 의사당 폭동 선동 혐의, 지난주 조지아주의 대선 방해 이유 등으로 트럼프는 지난 5개월 동안 모두 네 차례나 기소됐다. 특이한 점은 기소된 이후의 트럼프 지지율과 모금액이 되레 급등했다는 사실이다. 사생활 문란에 민주주의 훼손 등 독불장군 스타일인 트럼프의 건재함은 미국 정치의 수수께끼다.

보수 논객 데이비드 브룩스의 자성론에 따르면 미국은 어느새 고학력 전문가들만 모든 기회를 독점하는 나라로 변했다. 예컨대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은 총 500개 카운티 정도에서만 승리했는데, 이들은 미국 경제의 71%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대로 트럼프는 2500개 이상의 카운티에서 지지를 얻었는데, 이 지역들은 미국 경제의 29%에 불과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좋은 학교를 나온 전문가 엘리트 집단만이 미국의 법조계, 언론계, 경제계, 관료계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민주당 성향이다. 이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대표하고 결집해 내는 정치인이 공화당의 트럼프인 셈이다. 게다가 바이든도 부통령을 지낸 후 기밀문서를 집으로 가져갔었다. 바이든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망을 이용해 중국과 우크라이나에서 거액을 벌어들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런 의혹들이 이중잣대와 내로남불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을 때려잡고, 우크라이나는 외면하고, 유럽과는 거리를 두고, 아시아는 몰아세우려는 트럼프의 비(非)개입주의와 거래 중심 세계관도 지지자들의 성향과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 “여러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을 위하여” 자신이 기소됐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트럼프가 늘어놓아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제목의 책은 국내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 저자들의 풍부한 설명과 자료들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 민주주의 위기를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들이 미국의 민주주의 퇴행을 다루면서 오직 트럼프에게만 비판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국민에 대한 분석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마치 나쁜 오빠에게 현혹된 일시적 일탈 현상쯤으로 진단한다. 이는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는 경향이기도 하다. 물론 트럼프나 그의 지지자들을 옹호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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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점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정치가 위험해지는 순간이 여럿 있는데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국면이 그중 하나라는 교훈이다. 이성과 설득이 통하지 않는 극단적 유권자들의 등장은 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결과물일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방법에 대해 진솔하게 논의해 볼 수 있다.
2023-08-2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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